겹악재 시달리는 아모레퍼시픽, 서경배號 리더십 시험대

입력 2020-09-23 04:06

아모레퍼시픽그룹의 부진이 심상찮다. 국내 화장품 업계의 독보적인 1위 자리를 2017년 LG생활건강에 내준 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실적 부진뿐 아니라 로드숍과의 상생, 공정거래법 위반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서경배(사진)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22일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의 3분기 실적은 기대치보다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3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감소한 1조1000억원, 영업이익은 65% 급감한 380억원으로 예상된다”며 “온라인 채널을 제외하고 모든 채널에서 역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오랫동안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최강자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승승장구하던 아모레퍼시픽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17년 전후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하면서다. LG생건은 사드 보복에도 중국 시장에서 럭셔리 브랜드 ‘후’로 입지를 탄탄히 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2017년 업계 1위 자리를 LG생건에 내줬다. 이 무렵만 해도 화장품 업계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이 금세 1위를 탈환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오히려 LG생건과 강력한 경쟁구도를 형성하지 못하고 가파르게 하락세를 걷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확인한 아모레퍼시픽그룹 최근 5년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5년 동안 5조원대에서 조금씩 오르내렸으나 영업이익은 매년 10~30%씩 감소했다(연결기준).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962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 2868억원보다 67%가량 빠졌다. 3분기 감소폭도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전망돼 4분기에 극적 반전이 나타나지 않는 한 올해 아모레퍼시픽의 영업이익은 2000억원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5년 만에 영업이익이 4분의 1 수준으로 추락하게 되는 셈이다.

아모레퍼시픽의 부진은 ‘총체적 난국’으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중국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게 뼈아프다. 아모레퍼시픽은 사드 보복으로 타격을 받은 이후 중국 시장에서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아모레퍼시픽의 럭셔리 브랜드 ‘설화수’는 중국 시장에서 LG생건의 럭셔리 브랜드 ‘후’에 완전히 밀렸다. LG생건은 ‘후’뿐 아니라 ‘오휘’ ‘숨’ 등 다양한 브랜드로 중국 시장 점유율을 넓혀간 반면 아모레퍼시픽은 브랜드 확장에도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는 로드숍이 발목을 잡고 있다. 화장품 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아리따움,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등 아모레퍼시픽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드숍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온라인 강화를 이유로 이커머스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높였는데 반대급부로 가맹점주의 경영난을 가속화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맹점주들은 아모레퍼시픽의 상생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공정거래법 위반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 계열사인 코스비전에 예금담보를 무상 제공해 부당 지원으로 과징금을 물게 됐다.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화장품 업계가 전반적으로 어렵긴 하지만 아모레퍼시픽 실적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 정도면 주주들을 중심으로 리더십에 의문을 가질 만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