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병원서 사다리차로, 제방 터지자 어선·보트로… 생명 구한 시민 영웅들 ‘119의인상’

입력 2020-09-23 04:02

문기학(55) 신복수(59) 이은수(57)씨는 지난 7월 10일 새벽 전남 고흥군의 한 병원에 큰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직감적으로 병원에 고립돼 있을 환자들을 떠올렸다. 갖고 있던 이삿짐 사다리차와 고소 작업차를 몰고 불이 난 현장으로 급히 달려가 건물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했다.

고대권(46) 박성안(35) 손성모(37) 최봉석(44)씨는 지난 8월 장맛비가 쏟아질 때 전남 구례군 섬진강 제방이 붕괴되자 자신들이 소유한 소형 동력어선과 보트를 이용해 고립됐던 주민들을 구조했다. 이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그런 상황이 닥치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먼저 나서서 했을 뿐 앞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도 주저없이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난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소중한 생명을 구한 평범한 시민들이 영웅으로 선정돼 ‘119의인상’을 받는다.

119의인 기념장

소방청은 23일 재난 현장에서 헌신한 7명에게 ‘119의인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119의인상’은 화재·구조·구급·생활안전 등 소방업무와 관련해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 보호에 기여한 일반 국민에게 수여된다. 수상자에게는 119의인 기념장과 손목시계가 주어진다.

문씨 등 3명은 이삿짐 사다리차와 고소 작업차를 타고 화재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이들은 위급 상황을 파악한 뒤 이삿짐을 싣는 바스켓에 소방공무원을 탑승시켜 건물에 고립된 주민을 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씨와 박씨는 구례 수해지역에서 재난 초기부터 어업용 소형 동력어선을 활용해 70여명의 주민을 구조하고 노인요양병원에 비상발전기, 긴급의약품을 조달하는 데 도움을 줬다. 손씨와 최씨는 구례 수해지역에서 낚시용 보트를 이용해 6시간 동안 주택, 아파트 등을 돌며 고립돼 있던 40여명의 주민을 구조했다.

119의인상과 별도로 경찰관과 의용소방대원에게는 소방청장 표창이 수여된다. 표창을 받는 고진형(30) 경장은 지난 8월 5일 지적장애 아동이 없어졌다는 112신고를 받고 순찰 중 경기도 의정부시 중랑천에서 떠내려가는 어린이를 발견, 현장에 뛰어들어 구한 뒤 심폐소생술로 살려냈다. 박춘수(51) 의용소방대원은 지난 7월 10일 전남 고흥 병원 화재 당시 윤호21병원 7층에 입원 중이던 거동불편 환자를 발견하고 소방공무원과 함께 구조한 뒤 다시 랜턴을 들고 화재 현장에 진입해 환자들을 탈출시키는 데 기여했다.

정문호 소방청장은 22일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 희생정신은 높이 평가받고 기록돼야 한다”며 “앞으로도 119의인들의 명예를 기릴 수 있는 시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소방청 개청 후 2018년부터 시작된 119의인상을 수상한 사람은 20명이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