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독감 백신 무료 접종 일정이 중단됐다. 백신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백신 관리에 중대한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백신은 추가 물량 확보가 어렵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의 대유행 속에 독감 백신을 꼭 맞겠다는 사람이 많아 자칫 대혼란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문제가 된 백신은 13~18세 청소년 대상으로 22일 접종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백신이 냉장차량으로 이송된 후 의료기관으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의심된다. 독감 백신은 약사법에 따라 냉장온도로 유지되어야 한다. 상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품질이 훼손돼 독감 예방접종 효과가 떨어진다. 심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의심 분량은 500만 도즈. 500만명이 1회 접종할 수 있는 양으로 이 중 어느 정도가 상온에 노출됐는지는 품질 검증을 거쳐봐야 한다. 결과가 나오는 데 2주 정도 걸린다. 그러나 일부는 품질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더라도 과연 이를 믿고 아이들에게 접종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려는 또 있다. 백신 유통 문제가 알려지게 된 것은 자체 조사가 아니라 외부의 제보였다. 때문에 이미 지난 8일부터 시행돼 무료 접종을 마친 생후 6개월~만 9세 미만(2회 접종 대상) 대상 백신은 안전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심까지 증폭되고 있다.
예방접종 중단 결정은 전날 밤 다급하게 이뤄졌다. 미처 이를 알지 못하고 병원을 찾은 이들로 일선 현장이 혼선을 빚기도 했다. 문제는 이후 상황이다. 문제가 된 백신을 폐기할 경우 대체할 백신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올해 무료 접종 대상은 전 국민의 37%에 해당하는 1900만명이다. 야당이 전 국민 무료 독감 예방접종안을 내놓았을 때도 방역당국은 백신 추가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난색을 표해 왔다. 최대 500만명 분의 백신을 폐기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면 올겨울 백신 공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 상황을 통제하는 것도 어려워질 게 뻔하다.
독감 백신을 일선 의료기관에 안전하게 공급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코로나 확산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엄중한 상황에서 정부의 백신관리가 이처럼 허술하게 이뤄졌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생명과 관련된 백신을 일반 택배 배달처럼 전달한 셈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국민의 불안감을 씻어줄 수 있도록 백신 관리 전반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사설] 초유의 독감 백신 접종 중단, ‘트윈데믹’ 우려스럽다
입력 2020-09-23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