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화투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60대 남성은 흉기 난동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난 뒤 불과 40분 만에 2명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을 해칠 만큼 분노한 화투판은 1점당 100원짜리 ‘고스톱’ 판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안이한 대처로 살인을 방조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경찰 대응이 적절했는지) 조사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해명했다.
21일 경기도 분당경찰서에 따르면 A씨(69)는 지난 19일 B씨(76·여)의 금곡동 아파트에서 이웃 4명과 화투를 치다 오후 8시57분부터 9시까지 경찰에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나를 포함해 5명이 불법 도박을 벌이고 있으니 단속하라”는 신고였다. A씨가 당시 돈을 여러 번 잃고선 홧김에 신고했을 것이라는 게 경찰 관계자들의 추정이다.
신고 10분 뒤 경찰이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화투판은 엎어져 정리된 뒤였다. 화투를 친 이웃들은 “지인끼리 재미 삼아 고스톱을 쳤다”며 난처해 했다. A씨는 끝까지 “불법 도박”이라고 목청을 높였지만 경찰은 “지인끼리 재미 삼아 치는 고스톱일 뿐 불법 도박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이 “현장에 화투 증거가 없어 현행범 체포가 어렵다”고 하자 A씨는 “왜 체포하지 않느냐”며 소란을 피웠다.
이 고스톱판은 1점당 100원 안팎의 소규모 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1점당 100원짜리 화투’는 불법 도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경찰 단속 기준은 판돈 20만원 이하에 참가자 중 도박 전과자가 없으면 훈방이나 즉결심판에 회부하는 게 원칙이다.
경찰이 아무 대책 없이 집을 나서자 A씨의 난동은 더 격해졌다. 다시 경찰에 전화해 “내가 칼을 들고 있는데 여기 사람들을 찌르겠다. 나를 체포해 가라”고 신고했다. 순찰차에 막 올랐던 경찰은 다시 7층 집으로 올라가 A씨를 특수협박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첫 신고가 들어온 지 약 30분이 지난 오후 9시25분이었다.
경찰은 A씨를 경찰서로 연행해 약 2시간 동안 조사했다. 오후 11시20분 경찰은 A씨가 자신의 특수협박 혐의를 인정한 데다 주거지가 명확하다는 점을 믿고 ‘22일 다시 출석해 조사받으라’며 그를 풀어줬다. 경찰의 오판이었다.
이후 A씨의 범행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곧장 자택에 들러 소주병과 흉기를 들고나오는 모습이 CCTV에 녹화됐다. 경찰 석방 약 40분 만인 밤 12시쯤 B씨 집에 들어간 A씨는 20일 오전 12시19분 B씨 집에서 나와 자택으로 돌아갔다. 가져온 소주병은 사라진 채 흉기만 쥐고 있었다.
B씨와 C씨(73·여)는 20일 오전 7시50분쯤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B씨와 아침 운동을 하던 지인이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약 1시간 뒤 유력 용의자인 A씨를 그의 집에서 긴급체포했다.
A씨는 B씨와 C씨 살인 혐의를 여전히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이날 경찰은 범행을 저지른 정황이 명백하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성남=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