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의 영어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빌보드 메인 싱글 순위 ‘핫 100’에서 2주간 1위에 올랐다. 1958년 8월부터 순위를 집계했는데 이제까지 1위로 데뷔한 곡은 ‘다이너마이트’를 포함해 43곡이다. 이 중 2주 연속으로 1위를 한 곡은 20곡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라 할 만하다. 방탄소년단의 세계적 인기는 몇 년 전부터 계속됐지만, 그들의 노래가 1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곡이 1위를 차지한 가장 큰 이유는 가사 때문이다. 영어로 된 노랫말을 사용한 것이다. 빌보드 차트는 음원 판매, 스트리밍, 유튜브 조회수, 라디오 방송 횟수 등의 점수를 반영한다. 방탄소년단의 경우 그간의 노래들이 영어가 아닌 탓에 라디오 방송 횟수에서 다른 매체의 성적에 비교해 저조했다.
가사를 영어로 하자 미국 라디오 방송 횟수가 크게 늘면서 1위를 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언어라는 벽을 낮춘 전략이 주효한 셈이다. ‘우리 쪽으로 오라’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던 이들이 ‘너희들 쪽으로 우리가 갈게’라며 손을 내민 것이다. 정체성의 변질이 아니라 정체성의 확장인 것이다.
내게 설교와 강연에서 가장 어려운 대상은 단연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었다. 이들은 조금만 지루하면 몸을 비틀고 옆 친구에게 장난을 건다. 그러니 이들에게 적합한 언어와 개념을 써야 하는데 평소 어른의 세계에서 생각하고 말하던 습관을 단번에 아이의 눈높이로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사무엘상 24장의 한 장면을 설교할 때의 일이다.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이 용변을 보기 위해 굴속으로 들어간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이었다. “여러분, 사울이 배가 아팠어요. 배가 아프면 어디에 가지요”라고 물었다. 당연히 화장실이라는 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일제히 “병원이요”라고 외쳤다. ‘배가 아프고 열이 나면 병원에 간다’고 배웠으니 아이들 처지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어려움이 해소된 건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면서부터였다. 아이와 동요를 부르고 동화책을 읽어주며 놀다 보니 아이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더는 ‘내 설교를 이해할 수 있겠니’라며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됐다. ‘자, 잘 들어봐. 너희들에게 정말 중요한 얘기를 해줄게’라며 말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복음의 본질을 아이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는 눈과 귀가 열린 것이다.
책 ‘인간과 말’의 저자이자 철학자인 막스 피카르트는 복음의 언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풀었다. ‘지금 이 시대에 복음의 언어가 자신의 본성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세속 언어의 엔진과 경쟁하며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완전히 다른 언어가 되는 것이다. 완전하게 다른 존재로 마법을 발휘하는 것이다.’
책 ‘타인에 대한 연민’의 저자인 마사 누스바움 교수는 “철학이 적을 존중하는 법은 알려주지만 적을 사랑하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예술과 종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갈수록 교회를 향한 세상의 냉소와 불신이 깊어가는 지금, 교회는 세상을 향해 어떤 언어를 들려주고 있는가. 슈퍼맨 영화를 보고 난 후, 장롱에서 보자기를 꺼내 망토처럼 걸치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다치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아이의 확신을 믿음이라고 오해하는 건 아닐까.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대화하면 유치해지는 거로 생각해 끝내 훈계로 일관하는 고지식함을 어른의 품격이라 착각하는 건 아닐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하늘의 영광을 보게 해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언어를 기억해야 할 때다.(요 1:14) 비난과 정죄의 날 선 언어가 난무한 세상 속에서 자비와 긍휼의 언어로 무리를 대하시고, 위선과 교만의 언어로 진리를 가리는 이들에겐 비유와 침묵으로 대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언어. 그분의 언어를 한 절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구원을 향한 우리의 초대에 세상은 좀 더 귀를 기울일 것이다.
성현 목사(필름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