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논단] ‘목회자 정년’ 어찌할 것인가

입력 2020-09-22 20:03

세상은 저만치 앞에서 뛰어가고 있다. 반면, 교회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발상에서 헤매고 있다. 세상은 ‘인생 이모작’을 말하는데 교회는 ‘정년 연장’을 말한다. 서울시에서는 ‘오십플러스(50+)’라는 포털을 만들어서 실버시대를 준비하도록 돕고 있다. 그런데 교회들은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각 개인이 알아서 헤쳐 나아가야 한다. 심지어 정년제도가 실시되는 교단에서 정년제도가 없는 교단으로 옮기는 ‘웃픈 현실’이 발생하고 있다. 그야말로 갈팡질팡한다. 이는 정책의 부재로 인한 혼선이고 혼란이다.

성경은 기독교인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강조하지만, 또 많은 설교자가 그렇게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반대의 인식을 주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매년 9월이면 각 교단에서 총회를 한다. 예장합동에서는 ‘정책 총회’를 지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교단의 정책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 은퇴를 하고 있고, 은퇴를 맞이하는 목사들은 ‘베이비 붐’ 세대이다. 이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 토론과 협상의 시대가 아니라 주입식 교육을 받고 앞만 바라보고 질풍노도의 시대를 살아왔다.

‘목회자’의 소명과 사명에 생명을 걸고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이들에게 현시대는 대단히 불편한 시대이다. ‘IT, 네트워크, 포털, 플랫폼’ 등과 같은 용어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다. 컴퓨터가 부담스러운 시대를 살아왔다. 어쩌면 이들 목회자 가운데 해외여행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이가 부지기수이다. 이들이 맞이하는 정년은 마치 생명의 단절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의 정년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교단들은 정년을 맞이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목회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가을총회라도 이런 정책을 준비하는 모임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 교단에 국한되어진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어떤 이들은 앞으로 목회자로 지원하는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탄력적인 정년제도의 시행일 필요한 것처럼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교단의 규모보다 총대의 숫자를 늘리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당회를 구성하지 못하는 작은 교회라도 복음적인 사명을 감당하기에 부족한 것만은 아니다. 작지만 강한 복음의 능력이 있는 교회들이 생겨나는 정책과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각 교단의 신학교들도 미래 교회를 향한 말만 무성하고 걸맞는 커리큘럼은 부족하다. 심지어 교회 개척설립에 관련된 커리큘럼도 제대로 없는 곳이 많이 있다.

21세기를 살아가야 하는 한국교회가 미래를 향한 준비를 머리와 입으로만 해서는 안된다.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오늘의 현실은 과거와는 너무 다르다. 더욱이 비대면 시대를 맞이하는 교회의 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교회 설립 세미나’가 필요하고, 은퇴를 준비하는 ‘목회 이모작 학교’의 설립이 필요하다. ‘국민일보 미션플러스 팀’에서는 이러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정책적인 대안을 만들어 나아가는 모임들이 상호 발전을 위한 ‘Collaboration’을 준비해야 한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려면 세상을 선도하려면 세상보다 저 멀리 뒤에서 달려서는 안 된다. 이 시대를 초월하며 다음 시대를 예견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

2020년 가을 기독교 교단 총회가 눈을 크게 뜨고 심호흡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복음의 본질은 결코 변할 수 없고, 변질시켜도 안 된다. 그러나 복음을 통한 새로운 문화 운동을 펼치면서 정책적인 대안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해야 한다.

정책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살림과 세움과 협력과 소통과 미래를 바라보는 실천적 제안’이 가능한 정책을 만들어 나아간다면 ‘가나안 성도’가 연어처럼 교회를 향하여 발길을 옮기며 새로운 도약과 부흥을 기약하게 되리라 확신한다.

박기성 목사(서울예드림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