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대규모 반정부 시위… 금기 ‘군주제 개혁’ 촉구

입력 2020-09-21 04:05
지난 19일 태국 왕궁 옆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연합뉴스

태국의 반정부 시위가 심상치 않다. 수도 방콕에서 주말 동안 수만명이 거리로 나와 최근 몇 년 중 가장 큰 규모의 시위를 벌였고 왕실국가인 태국에서 금기시하는 군주제 개혁을 본격 촉구하고 나섰다.

방콕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학생단체 ‘탐마삿과 시위 연합전선’은 지난 19일 오후 2시부터 방콕 시내 탐마삿대학 타쁘라찬 캠퍼스에서 반정부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은 집회 참가자가 10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경찰 추산 인원도 5만명이 넘는다.

인근에 있는 왕궁 맞은편 사남루앙 광장에도 2만여명 시위대가 모였다. 이들은 시위 이틀째인 20일 3년 전 사라졌던 태국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기념 동판을 복원해 재설치했다. 동판에는 “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지, 그들이 우리를 속여온 것처럼 군주의 것이 아니다”는 글귀가 새겨졌다. 이 동판은 1932년 태국 절대왕정을 끝내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계기가 된 무혈혁명을 기념해 1936년 설치됐지만, 마하 와치랄롱꼰 현 국왕 즉위 이후인 2017년 4월 갑자기 사라졌었다.

시위대는 이후 10개항의 군주제 개혁 요구 리스트를 총리실에 전달하겠다며 행진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리스트에는 왕정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 폐지, 새 헌법 제정, 왕실 폐지, 군정 축출, 국왕 경호원 해산 등이 포함됐다. 태국에선 왕실 모독죄로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왕실 언급 자체가 금기로 통하는데도, 10~20대가 주축인 시위대는 근본적 정치 개혁을 촉구한 것이다.

시위대는 요구안을 경찰청장에게 대신 전달한 후 ‘승리’를 선언하고 자진해산했다. 이날 시위는 2014년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일으킨 쿠데타 이후 최대 규모다. 시위대는 다음달 14일 시민혁명 기념일에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