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건 오름 뿐인데 매년 1000만원을 어떻게 냅니까. 수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재산세만큼 땅을 떼어가라고 했어요, 제주시에.”
재산세 납부의 달 9월을 걱정으로 보내는 마을이 있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송당은 제주에서 꼭 한번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히는 아부오름(사진)을 비롯해 당오름, 칡오름 등 8개 오름이 모여 있다. 수백개의 오름을 가진 제주에서도 ‘오름의 본고장’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그런데 이런 마을에 이달초 재산세 고지서가 날아들면서 주민들은 걱정에 휩싸였다. 1096만원. 송당리 마을회가 내달 초까지 납부해야 하는 재산세다.
2014년 신설된 지방세특례제한법 감면 특례 제한에 따라 올해부터 전국 마을회가 재산세 납부 대상이 됐다. 재산세 산출세액 50만원 미만은 기존처럼 전액 면제가 적용되지만, 50만원 이상의 경우 납부 세액의 15%를 내도록 전액면제 규정이 축소됐다.
올해 마을회 재산세 부과는 전국적 현상이다. 그러나 제주에선 파장이 유독 심하다. 조상 대대로 공동부지에서 말과 소를 함께 방목해 키워온 제주 특성상 마을회 소유 임야(목장용지)가 넓기 때문이다. 매각이나 임대없이 자연물 그대로 지켜온 마을들은 더 큰 세금폭탄을 맞고 있다.
원주민 400여명이 감귤이나 콩을 재배하며 오손도손 사는 제주시 조천읍 대흘2리도 이런 처지에 놓였다. 37만㎡(구 11만평)에 이르는 마을공동목장 탓에 마을회는 800만원의 재산세를 매년 내야할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대흘2리 공동목장은 오래전 주민들이 말과 소를 사육할 때 방목지로서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돼 줬지만, 지금 이 마을에 말이나 소를 키우는 농가는 없다. 다른 마을이 골프장이나 사설 관광지 등 돈 많은 기업에 토지를 넘길 때 “그래도 마을 재산을 지키자”며 아껴둔 게 이젠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제주다운 경관’ 유지를 위해 많은 정책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제주 행정도 난감한 상황이다. 제주시는 경관의 공익성과 수익 정도를 고려한 과세율 조정 가능 여부를 법제처에 여러 차례 질의했으나 대안을 얻지 못했다. 제주시 재산세과 관계자는 “보유한 만큼 세금을 내는 게 조세 형평에 맞지만 경관의 공공적 성격을 감안할 때 일부 마을은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마을들은 당장 내달 5일 납부 기일을 앞두고 비상이다. 대흘2리 관계자는 “우리는 400명 남짓한 주민들이 대부분 원주민이라 (세금을 낼) 방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송당리 마을은 “차라리 땅의 일부를 현물로 가져가라”며 제주시에 납부 불가 입장을 통보한 상황이다.
한편 정부는 일반 납세자와의 조세부담 형평성을 고려해, 지방세 경감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세액을 납부하도록 2014년 지방세특례제한법에 ‘지방세 감면 특례 제한’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따라 2015년 어린이집 유치원을 시작으로 2016년 박물관 미술관, 2017년 매매용 중고자동차, 2018년 지역아동센터 농협, 2019년 평생교육단체, 2020년부터는 마을회와 사회복지법인 등이 순차적으로 세액 전액 감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204개 마을회 등에 3억3200만원의 재산세를 부과한 상태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