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나간 ‘지역화폐’ 논쟁… “정치권이 입맛대로 선택 비판”

입력 2020-09-18 00:09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9일 경기도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코로나19 여파로 침체된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한 지역화폐 활용 방안을 밝히고 있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조세재정연구원이 지역화폐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뒤 이 지사가 이에 강력 반발하면서 이 문제가 정치권 이슈로 번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의 보고서를 비난한 것을 시작으로 촉발된 지역화폐 효과 논쟁이 거세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역화폐를 다룬 보고서들의 분석 방향이 다른데 정치권이 정략적 판단하에 불필요하게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조세연은 기존 소비, 인접 지역 소비에 대한 지역화폐의 대체 효과를 분석한 반면 경기연구원은 지역 내 매출액 변화를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이 지사가 비난한 조세연의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는 지역화폐의 ‘대체 효과’를 다루고 있다. 지역 내 가맹점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는 기존에 쓰려던 현금 대신 사용한다. 또 당초 하려던 소비를 다른 상품권 대신 지역화폐로 결제할 수 있다. 아울러 다른 지역에서 할 소비를 주거 지역의 소비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기존 소비를 지역화폐로 대체해 ‘소비 총량’이 같다면 효과가 크지 않다. 이 부분을 주로 분석한 것이 조세연 보고서다.

조세연은 평소 동네마트에서 10만원을 지출하는 가구는 지역화폐 3만원을 받아도 해당 마트 소비를 늘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역화폐를 지급해도 지출액이 13만원이 아닌 10만원 한도 내에서 멈출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또 가맹점이 비슷한 온누리상품권 등 다른 상품권을 지역화폐 대신 사용할 경우에도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지역화폐는 거주민 지출의 외부 유출을 막아 지역 내 소상공인 매출을 증가시키는 반면 인접 지역의 매출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형 지방자치단체의 지역화폐 발급은 인근 소형 지자체에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지역화폐 도입에 따른 전 국가적인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지역화폐가 기존 소비 대체에 불과하다면 발행·관리 비용에 따른 순손실이 더 크다는 것이 조세연의 평가다.

반면 경기연 보고서는 지역 내 소상공인 매출액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기연이 최근 공개한 ‘2019년 1~4분기 지역화폐의 경기도 소상공인 매출액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동일한 점포는 지역화폐 도입 후 매출액이 약 115만원 증가, 다른 점포끼리 비교하면 지역화폐 경험이 있는 곳의 매출액이 약 475만원 높다고 분석했다.

경기연이 기존 소비 대체 효과를 언급한 부분은 많지 않다. 일부 기존 소비를 대체하는(43%) 부문이 있더라도 추가적인 소비가 일어나고(57%), 이를 통한 매출액 증가가 나타난다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 경기연의 집중 연구 대상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경기연은 인근 지역과의 관계는 분석하지 않았다. 또 매출액 증가분 중 기존 소비가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대체 효과’보다 소상공인·지역 매출액 추이 등에 깊이 접근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 정부 고위 관계자는 “조세연은 지역화폐가 기존 소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와 타 지역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고, 경기연은 지역화폐 지급 후 지역 내 매출액 추이를 살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고서가 분석하는 방향과 관점이 달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쉽지 않음에도 정치권이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 선택해 비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전슬기 기자, 전성필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