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비대면 경제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제품, 서비스, 사람을 마주하거나 겪지 않고도 구매와 지불이 이뤄지는 비대면 경제는 전염병 시대에 제격이다. 정부도 기업도 디지털로 연결되는 비대면 시스템을 견고히 하기 위해 적잖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이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면 훌쩍 뒤처지게 될지 모른다.
이 와중에도 비대면 경제의 확산을 경계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그 대열에 슬쩍 껴 있다. 마냥 환영하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 깊숙한 데 아날로그 방식에 대한 집착이 단단히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대한 버텨보리라 힘을 줘보지만 디지털로의 대전환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물결에 떠다니는 작은 몸뚱이의 저항 따위, 물론 그다지 의미는 없다. 소소하게 투덜거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유통산업을 취재하는 기자의 관점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사실 긍정적인 측면이 꽤 많다. 전염병 시대에 감염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거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편리함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강점 말고도 그렇다.
비대면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 아이디어, 기술력, 소비자 욕구, 수익을 낼 만큼의 수요 등과 함께 ‘신뢰’가 떠오른다. 기업은 정직을 내걸고, 정부는 적절한 감시와 규제를 약속한다. 100%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소비자는 이 체계를 크게 의심하지 않으며 기꺼이 동참한다.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산 제품이 기대했던 대로 도착하리라는 확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식당의 메뉴를 리뷰만 보고도 주문할 수 있는 믿음 같은 게 있는 것이다. 기대를 저버리는 상품이 올 수도 있고 생각만큼 맛있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작은 실패담’이 하나 추가된 것일 뿐 ‘이런 거래 방식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식으로 비화하지 않는다. 직접 그 자리에서 확인하는 과정을 생략해도 거래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형성돼 있다. 이 신뢰 관계는 꽤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대체로 안전한 곳이라는 안심이 들게 한다.
아직 판단하기에 모호한 지점도 있다. 비대면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것, 대체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평가다. 이를테면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손톱을 다듬는 것처럼 사람의 몸으로 사람의 몸을 돌보는 일은 비대면으로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면 서비스의 가치는 앞으로 얼마나 오를 것인가. 비대면이 보편화되면 대면 서비스의 가치가 희소성을 갖고 가격이 급상승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소비의 양극화가 짙어진다. 대면 경제가 확고한 영역을 이어가면서 급격한 가격 변동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대면 여부와 상관없이 각각의 값어치가 적절하게 인정된다면 우리 경제는 훨씬 활력을 가질 것이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단절과 소외다. 예컨대 누군가 1주일에 두세 번씩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식당이 있더라도 식당 주인은 그의 얼굴을 모른다. 서로를 단골이라며 내심 고마워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이렇다 할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골식당 주인과 손님 사이지만 우연히 길에서 부딪혔을 때 초면인 두 사람은 서로 주저 없이 불쾌감을 주고받을지 모른다. 아예 비대면 경제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스마트폰 사용이 어렵거나 다양한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지역에 산다면 선택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비대면 경제가 주는 효용은 상당하다. 정부도 기업도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는 것은 그럴 만한 일이다. 하지만 경쟁적으로 ‘전환’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잃는 것이 많아질 수 있다. 바쁜 길을 가고 있지만 이따금씩 차분히 숨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겠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