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와 기업의 경제력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산업재해율이 1.0% 증가할 때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최대 1.2% 포인트 하락하고 노동자 1인당 1400만원 이상의 매출액 감소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간한 ‘재무제표로 살펴본 기업의 산재 예방 투자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산업재해율이 1.0% 증가하면 노동자 1인당 연 매출액은 약 1215만~1431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분석 대상 기업 1인당 평균 매출액(약 7억원)의 2.0% 정도에 해당하는 수치다.
연구원은 2011~2018년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586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국내 최초로 산업재해와 기업의 경영성과 연관성을 밝혀냈다. 연구원은 산업재해가 노동자 1인당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는데, 산업재해율 1.0% 증가 시 1인당 영업이익액은 약 211만~247만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동자 1인당 평균 영업이익액(약 3000만원)의 8.0% 수준에 해당한다. 산업재해로 인한 영업이익 감소는 매출액 감소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 능률 저하는 기업 전반의 경제력에 손실을 끼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재해율이 1.0% 늘면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1.11~1.21% 포인트 감소했다. 분석 대상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2.57%인 점을 고려하면 산업재해의 부정적 영향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같은 조건에서 매출액 성장률은 0.45~0.71% 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원은 “분석 대상 기업의 평균 매출액 성장률은 약 6.1% 수준으로 재해율이 1.0% 증가하면 평균 성장률의 약 10.0% 정도가 감소하는 것”이라며 “이렇듯 재해율은 해당 연도 경영 성과라 할 수 있는 매출액·영업이익액뿐만 아니라 매출액 성장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가 노동력을 상실케 하는 것은 물론 생산 차질, 기업 이미지 하락, 노사 관계 악화 등으로 인한 비용 발생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급기야 경영 악화로 인한 폐업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다.
실제로 1984년 인도 화학 공장 가스 누출 사고로 3700여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미국 다국적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와 1995년 2-브로모프로판 사용으로 노동자 20명이 생식독성장해를 앓게 한 국내 L기업은 민형사상 책임, 직간접적 손실액 발생, 노사 갈등 심화 등으로 사업장을 모두 폐쇄했다. 애플의 경우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폭스콘 공장에서 고강도 노동 환경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늘자 소비자 불매운동이 확산했고 이는 애플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렸다.
박선영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안전보건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이번 분석 결과는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 즉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기업이 대상이었기 때문에 산업재해 발생 대응 시스템도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며 “규모가 작은 기업까지 포함해 분석한다면 산업재해의 부정적 영향은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다. 기업의 안전 의식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후진국형 안전사고는 멈추지 않는다.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국내 노동자는 매년 1000여명에 이른다. 산업재해 예방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 일어나는 사망사고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올 상반기 산업재해로 인한 국내 사고 사망자 수는 47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1% 늘었다. 1~49인이 근무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사망자가 366명(77.8%)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연령별로는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188명·40.0%)가 가장 많았다. 사망사고가 잦은 업종은 건설업(254명·54.0%)과 제조업(97명·20.6%) 순으로 나타났다. 낙하로 인한 사망사고(178명·37.9%)가 절반에 가까웠고 끼임·부딪힘·화재 및 폭발사고 등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밖에 재해자 수는 5만1797명으로 0.3% 증가했다.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를 500명대로 줄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공단 등은 산업안전 제도 보완과 위험 사업장 집중 점검 등 노력을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월 16일부터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원청 시공사의 안전 의무 책임이 대폭 강화됐다. 정부가 산안법을 전부 개정한 것은 1990년 이후 28년 만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는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를 계기로 공공·민간 공사 모두 적정 공사기간 산정을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형사처벌과 함께 명단을 공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건축 자재의 화재 안전 기준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한 노동 전문가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정부 정책을 강화하는 것에서 나아가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뒤지는 중소기업의 자구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산업 현장의 위험 요인을 첨단 기술력으로 극복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 연구위원은 “산업재해 발생은 사고보상 비용이나 신규 노동자 고용 같은 직접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비용인 매출액과 같은 기업의 지속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이는 기업이 사업장 내 산재 예방에 투자를 늘려야 하는 이유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보다는 유비무환의 자세로 안전 문화를 개선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