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배추 한포기 집었다 슬그머니 내려놓는 손

입력 2020-09-21 17:47
채소 매대에서 가격을 보고 구매를 망설이는 고객.

추석을 2주 남겨둔 지난 16일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 채소 매대에서 만난 주부 정금희씨는 배추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정씨는 “채소 가격이 많이 올라 손이 가지 않는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날 해당 마트는 배추 한 포기 6480원, 무는 개당 3400원에 팔았다. 현장 직원은 “지금 상황에선 이마저도 싼 편”이라고 말했다.

카트를 돌린 정씨는 “오이, 애호박, 고추 가격도 많이 올랐다. 찬거리를 살 겸 들렀는데, 빈 카트만 끌고 다니고 있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실제 해당 마트에 따르면 배추와 무 가격은 작년 추석 2주 전과 비교해 40%가량 오른 상태다. 지난 7월~8월 장마와 태풍으로 경작지가 침수하고, 흐린 날씨에 생육도 부진하면서 채소 과일을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곧 추석인데 명절 물가가 걱정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맞은편 과일 매대에서 사과를 살펴보던 이모씨는 “채소와 과일 가격이 다 비싸니 이번 명절은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만 먹어야 할 것 같다”라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지난 16일 기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등 대형유통업체의 주요 농산물 가격은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배추(상품) 1포기 평균 소매가격의 경우 지난해 5179원에서 117%가 올라 1만1241원을 기록했다. 무(상품) 역시 지난해 2105원에서 85% 오른 3898원에 거래되고 있다. 애호박, 건고추, 대파는 각각 48%, 57%, 36% 뛰었다. 차례상 대표 과일인 사과(10개 기준)의 평균 소매가격도 3만83원으로 지난해 대비 25% 올랐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생육기간이 짧은 채소는 근 시일 내 가격이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과일의 경우 기상 악화에 작황이 좋지 못했고 상품화 가능한 물량이 줄어든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전 비축에 한계가 있어 도매에서 물건을 조달하다 보니 대형마트 역시 가격 인상 부담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래시장도 농산물 가격 급등에 직격타를 맞고 있다. 같은 날 오후 찾은 남대문시장 한 채소 가게에서는 가격 흥정이 한창이었다. 상추와 고추를 깎아 달라는 한 손님의 말에 상인은 “우리도 남는 게 없다”면서도 몇 천원을 깎아주곤 검은 봉지를 손님에게 건넸다. 채소 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송모씨는 “비싼 배추는 1만원을 웃돌고 있고, 중품 역시 못해도 8000원 9000원은 받아야 수지타산이 맞는 상황”이라며 “상인들도 2배 3배가 올랐다고 놀라는데 손님들은 오죽할까 싶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또 “식당 등도 코로나19로 영업이 여의치 않아 식자재 납품도 줄어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공급확대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농식품부는 배추, 무, 사과, 배 등 명절 수요가 많은 10대 성수품의 공급량을 평상시보다 1.3배 늘려 오는 29일까지 총 8만8000톤을 공급한다. 채소 과일은 농협 계약재배 물량, 축산물은 축협 도축 물량과 관련 단체 회원 보유물량을 활용한다. 민 관 합동으로 ‘추석 성수품 수급 안정 대책반’을 운영한다.

또 전국 하나로마트에서 명절 판촉 행사를 열어 농축산물 등 1300여개 품목을 할인된 가격에 제공할 계획이다.

한전진 쿠키뉴스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