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서울시향, 예술가와 노동자

입력 2020-09-17 04:02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경제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그동안 감춰져 있던 문제들을 수면 밖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음성적으로 이뤄져 오던 국공립 예술단체 단원의 개인레슨 문제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관련 역학조사 과정에서 서울시향과 국립국악원 단원의 개인레슨 문제가 불거지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예술단체는 공무원에 준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만큼 단원들은 직무 외 영리 활동이 금지돼 있다. 물론 예외적으로 단체의 공연과 연습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대표의 허락이 있으면 외부 출연과 출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공립 예술단원 상당수가 규정 위반인 개인레슨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공립 예술단원의 개인레슨 문제에 대해 음악계는 전반적으로 침묵하거나 모른 척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음악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개인레슨이 왜 문제냐”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개인레슨이 불법 및 규정 위반인지 몰랐다는 반응부터 예술가가 공무원도 아닌데 외부 활동을 왜 제한하느냐는 반응이 많다.

그동안 국공립 예술단원의 개인레슨이 만연했지만 용인됐던 이유는 ‘임금’이 적다는 인식 때문이다. 예술단체마다 수준이 다르지만 평균적으로는 공무원에 준한다. 그러나 프로 연주자가 되기까지의 투자 대비 수입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이번에 개인레슨 논란의 시발점이 된 서울시향의 경우 2020년 기준으로 131명에게 140억원의 인건비가 책정돼 있다. 즉 1인당 1억원이 넘는 셈이다.

서울시향 단원의 연봉이 국내 국공립 예술단체에서 가장 높아진 것은 2005년 세종문화회관 소속에서 재단법인으로 바뀌면서다. 당시 이명박 시장이 ‘문화도시 서울’을 목표로 서울시향을 세계적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만들겠다면서 유럽에서 활동하는 정명훈을 음악감독으로 영입했다. 이 시장이 약속했던 전용 홀 건립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단원 처우 개선은 바로 이뤄졌다. 단원들이 연주와 연습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새로 출범한 서울시향은 우수 단원 확보를 위해 매년 오디션에서 하위 5%를 퇴출시켰다. 이 같은 방식은 2014년 정 감독이 사퇴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듬해 최흥식 대표가 취임하고 노조가 생기면서 가혹하다는 평가를 받던 ‘하위 5% 퇴출 오디션’은 사라졌다. 문제는 이후 단원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회가 서울시향 감사에서 근래 끊임없이 지적하는 것이 정년이 없으면서도 근태 관리나 단원 평가가 제대로 안 된다는 점이다. 단원들의 개인레슨이 부쩍 늘어난 것도 2015년 이후부터라는 얘기도 나온다.

일각에선 현재 서울시향 단원의 개인레슨 문제는 명백한 규정 위반이지만 학생 지도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음악교육에 있어서 개인레슨은 필요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단원들의 개인레슨 등 겸직 허용 사례가 거론되지만 한국과 상황이 달라 일률적으로 비교하긴 어렵다. 또 국공립 예술단원 개인레슨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단원의 고용 형태를 종신고용제 대신 시즌계약제로 바꾸자는 말도 나온다. 그동안 국내에서 국공립 예술단체의 종신고용제가 단체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평가를 받아서다. 다만 고용 문제는 예민하기 때문에 단번에 바꿀 수는 없다.

정부나 지자체가 문제의 복잡성 때문에 못 본 척했지만 이참에 국공립 예술단체의 후진적 운영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물론 국공립 예술단원 역시 필요에 따라 예술가와 노동자를 선택해서는 안되며 공공기관 소속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