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전 국민 고용보험 위한 사회적 책임과 연대

입력 2020-09-17 04:03

이번처럼 고용안전망의 위력을 실감할 기회가 또 있을까.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3~4월 우리가 미국에서처럼 일단 자르고 보는 ‘패닉 해고’를 피할 수 있었던 데는 한국 고용보험 특유의 고용유지 지원 제도가 큰 몫을 했다. 해고 대신 휴직을 시키면 급여의 70%까지 지원해주기 때문에 기업들도 일단 버티기를 선택했다. 고용 위기가 최고조일 때 실직자가 100만명, 휴직자가 100만명 정도였다는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고용보험의 효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가 실업급여다. 지난해 8조원이었던 급여 총액이 올해는 12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이를 보고 보험 재정의 적자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어려울 때 4조원을 더 풀어 실직자의 생활 안정과 경기 활성화를 도모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부가 급할 때마다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 여러 명목의 지원금을 뿌리는 방식보다는 훨씬 합리적이다.

코로나 위기는 고용보험 밖의 사각지대를 부각시키는 계기도 됐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나 프리랜서, 영세사업장 종사자 대부분이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고 그 비중이 50% 가까이 된다는 현실에 모두 경악했다. 약자일수록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상식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첫 단계로 특고의 고용보험 가입부터 시작한 것은 매우 진취적이고 발 빠른 행보다. 그래봐야 기껏 70만~80만명을 추가로 가입시키는 것이지만 이것조차 현실이 되려면 여러 유형의 이해관계 충돌을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갈등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전 국민 고용보험의 성패가 갈린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갈등이 특고는 근로자인가에 관한 다툼이다. 근로자로 분류되는 순간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까지 적용되기 때문에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우버 기사의 근로자성 다툼에서 보듯 외국도 마찬가지다. 근로자성은 제쳐두고 사회보험만 전면 적용하는 타협이 가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8년 이후 14개 직종의 특고에 산재보험 가입을 허용했지만 지금까지 가입률은 13%에 불과하다. 의무가입도 아니고 보험료도 50%는 자부담이기 때문이다. 무늬만 사회보험인 것이다. 특고는 독립 사업자라는 인식을 깔고 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도 이렇게 흐를 위험이 있다.

두 번째 난관이 특고의 근로시간과 장소, 월별 소득과 사용자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보험 관리상의 어려움에 그치지 않고 기존 가입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한다. 보통의 근로자라면 보험료 원천징수가 가능하지만 특고의 경우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불투명하다. 이들을 근로자와 같은 보험에 넣으면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며 보험재정을 거덜낼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더구나 이들 직업의 특성상 일감이 줄고 소득이 떨어졌을 때에도 실업급여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으며 동시에 취업 상태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맞춤형의 다른 보험을 설계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지만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특고만이 아니라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 더 나아가 자영업자까지 염두에 둔다면 이참에 기존 설계를 대폭 변경하는 편이 낫다. 고용 형태 간의 공정성을 최대한 유지해야겠지만 사회연대의 정신도 살려야 한다. 지금 추세로 보면 새로운 유형의 고용 형태가 급속히 확산될 것이고 지금의 정규직 근로자도 언제든지 플랫폼 노동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가장 큰 난관이 특고 스스로 보험 가입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회보험에 가입하는 순간 소득 자료가 국세청에 노출되고 4대 사회보험에 모두 가입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취약계층일수록 내일보다는 오늘이 더 급한 경우가 태반이고 고소득자들은 각자도생의 윤리에 익숙하다. 그러나 모든 취업자가 고용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책임 몫은 자기가 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모든 운전자가 책임보험을 갖듯이. 다만 고용보험 가입으로 갑자기 각종 사회보험료와 세금 폭탄을 맞지 않도록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해서는 몇 가지 기술적인 조정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다시 짜는 수준의 큰 구상과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회계약으로서의 뉴딜이 필요한 국가적 과제인 것이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