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욕망 끊고 ‘하나님 사랑’ 회복하려면…

입력 2020-09-18 00:03

오래전 일이다. 기독교 공동체에서 매일 밥하고 노동하며 손님을 환대하던 시절이다. 손님이 식사한 뒤 남은 음식으로 우리 가족이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충분했던 음식이 부족해졌다. 호리호리하고 고상한 외모의 한 중년 부인이 원인이었다. 부인은 매번 먹고 또 먹으면서 ‘음식이 더 있느냐’고 물었다. 음식을 더 많이 준비했지만, 요구는 계속됐다.

알고 보니 부인은 외국에 있는 남편과 자녀와의 불화로 혼자 한국에 나와 있었다. 매일 전화로 가족과 다퉜고, 다시 돌아갈 집도 없는 상태였다. 불안이 그의 식욕을 자극했다. 평상시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먹고도 계속 먹었다. 그가 한 말이 기억난다. “내가 왜 이러지. 평소엔 이렇게 먹는 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더 줄 수 있나요.”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을 ‘욕망의 존재’라고 했다. 어떤 대상을 욕망하는 것이 사랑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창조됐다. 달리 말해 하나님을 욕망하는 존재다. 하나님을 향한 욕망이 중요한 건 이 거룩한 욕망이 다른 욕망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이 핵심 욕망뿐 아니라 주변 욕망에 관해서도 말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막 22:39) 하나님 사랑이란 핵심 욕망이 우리 안에서 정상 작동하지 않을 경우, 이웃에게 자기 사랑 이상의 사랑, 즉 하나님 수준의 사랑을 요구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이 죄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초대 교부들은 왜곡된 욕망이 끊임없이 신자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3~4세기 사막 교부들이 언급해온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 허영 등의 ‘대죄’ 항목이다.

기독교윤리학자인 신원하 고려신학대학원장이 쓴 이 책은 초기 교부들의 죄에 대한 통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교부들은 왜곡된 욕망의 사슬을 끊기 위해 매일 죄를 직시한 뒤 다시 십자가를 보는 ‘바라봄의 영성’을 실천했다.

이제 현대인에게 죄는 일종의 금기어가 됐다. 이전에 죄로 불리던 것들은 심리 현상과 정신질환, 태도의 문제로 축소됐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은밀한 곳에서 성적 욕구를 증폭게 하는 포르노의 유행, 탐식을 조장하는 방송, 본인은 성형했음에도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이들…. 우리는 위선으로 왜곡된 욕망의 환경에 놓여있다.

신자들도 이들 욕망이 죄가 아닌 것처럼 착각한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잃어간다. 책은 신자들의 궁극적 욕구인 하나님 사랑을 회복할 수 있도록 촉구한다.

이춘성 광교산울교회 협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