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통곡하며 하나님을 부르짖는 태도, 매사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않으며 원수까지 품는 아량, 겉과 속이 같아 함께하면 편안한 성품, 설혹 불이익을 받더라도 굳건히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모습….
예수께서 직접 가르친 ‘복 받은 사람’의 특징이다. 마태복음 5장 1~10절에 기록된 산상수훈의 팔복(八福) 내용이다. 팔복이 정의하는 복은 욕망을 비우고 성품을 가다듬어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것이다. 돈과 명예, 권력을 복이라 여기는 세속적 관점을 뒤집는다.
이상학(56) 새문안교회 목사는 이 팔복을 위기의 한국교회를 위한 유일한 해법으로 본다. 최근엔 새문안교회와 전임지 포항제일교회에서 한 팔복 설교를 엮어 ‘비움’(넥서스CROSS)을 펴냈다. 서울 종로구의 교회 목양실에서 이 목사를 만났다.
-왜 지금 한국교회에 팔복이 중요한가.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한다. 20년 전부터 그랬다. 위기 돌파를 위해 여러 시도를 했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게 현실이다.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아 그렇다. 작금의 위기는 교회가 본질인 예수를 놓쳐 생겼다. 목사도 그렇지만 성도 가운데 인생의 주인을 예수로 모시고 그분의 가치관대로 사는 이가 얼마나 되나. 우리가 놓친 예수를 다시 찾고자 한다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성품과 신앙 태도’를 다룬 팔복에서 그 길을 물어야 한다.”
-팔복을 비움에서 채움으로, 내면에서 세상으로 향하는 개념으로 소개한 게 독특하다.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의 ‘산상수훈’과 신앙공동체 모새골 임영수 목사의 ‘팔복강해’에서 영감을 받았다. 첫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를 비움의 개념으로 보고 이를 중시한 게 핵심이다. 심령이 가난한 상태, 즉 비워지면 타인을 향해 애통하고 온유한 사람이 된다. 또 의에 목마르게 되고 핍박을 감당할 수 있는 자리로 자연스레 가게 된다. 비움이란 첫발을 잘 떼야 팔복 여행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는 셈이다.”
-팔복 순서를 누차 강조하는데.
“한국교회가 보이는 신앙의 양극단적 태도가 있다. 현실은 부질없고 영원한 세계만 소중하다는 ‘이원론적 관념주의’와 하나님 의보다 윤리·도덕적 실천을 앞세우는 ‘행동주의적 조급성’이다. 팔복은 두 입장과 다르다. 세상과 이웃을 하나님 사랑으로 품으려면 먼저 내면이 자유롭고 평안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 3개 복은 자기 내면을, 4~5번째 복은 타자를 향하는 복이다. 6~8번째 복은 세상에 하나님 의를 드러내는 복을 말한다.”
-성서신학자 톰 라이트는 “기독교가 팬데믹을 설명하려 들지 말고, 신음하는 세상과 함께 애통하라”고 역설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 교회는 이 고난에 어떻게 동참해야 하나.
“굉장히 중요한 지적이다. 지금 교회는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과 뒹굴며 십자가의 사랑을 말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수고한 교회가 아예 없진 않지만, 우리를 포함해 많은 교회가 아픔의 현장으로 얼마나 치열하게 달려갔나. 부족했다. 구한말 선교사는 전염병 퇴치에 적극 나서 양귀자란 세간의 편견을 불식시켰다. 이런 역사가 있는 한국교회가 왜 헤매고 있나. 교회는 방역을 철저히 하는 한편 신음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사회의 진영논리가 더 팽배해졌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
“성경에는 보수·진보 가치가 모두 나온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자유를 줬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지지 말라”고 한다. 신명기 레위기 등에서는 객과 나그네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식량을 남기라는 내용이 있다. 보수의 가치인 자유, 진보의 가치인 공정과 분배가 모두 기록된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다. 그리스도인이 진영 논리를 극복하는 힘은 예수가 가르친 사랑의 법에서 나온다. 정치적 견해로 나뉘는 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다.”
-차기 언더우드 국제심포지엄은.
“지난해 심포지엄 강사인 새라 코클리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는 제가 부임하기 2년 전에 이미 초청하기로 결정한 분인데 반응이 참 좋았다. 지금은 세속화된 세계관 가운데 복음의 역할을 치열하게 연구한 톰 라이트 박사를 초청하려고 준비 중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