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이 분수 학습은?” 교사가 묻고, “통분 미숙” AI가 대답

입력 2020-09-16 04:06
대구 진월초등학교 신민철 교사가 등교 수업이 이뤄졌던 지난 7월 초 인공지능 학습관리시스템인 ‘칸 아카데미’를 모니터에 띄워 놓고 1대 1 지도를 하고 있다. 신 교사는 인공지능이 분석한 학생의 취약점을 학생과 공유하고 분수와 관련한 시각 자료를 활용해 개념과 원리를 설명했다. 진월초등학교 제공

학생들이 귀가하고 텅 빈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가 인공지능(AI) 프로그램과 회의를 하고 있다. 교사가 인공지능에게 묻는다. “지영(가명)이 분수 학습 상태를 말해줄래?” 인공지능은 즉시 교사 앞에 놓인 모니터에 진단 그래프를 띄우고 브리핑을 시작한다. “지영이는 분수의 개념은 이해하고 있으나 분모가 다른 분수의 덧셈을 자주 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통분(분수의 분모를 같게 만들기)에 미숙하며 그 이유는 배수와 약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보입니다.”

교사는 인공지능이 띄운 지영이의 학습 데이터를 찬찬히 살펴본다. 지영이는 분모가 같은 분수의 덧셈은 잘했지만 분모가 다르면 정답률이 현저히 떨어졌다. 오답을 살펴보니 역시 통분에서 애를 먹고 있었다. 통분 전 공부하는 배수와 약수 부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인공지능의 분석이 타당했다. 교사는 지영이에게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가기보다 배수와 약수 개념부터 잡아주기로 한다. “지영이가 참고할 학습 영상 추천해주고 지영이랑 화상 미팅 잡아줘. 지영이랑 비슷한 학생 리스트도.”

인공지능과 협력해 가르친다

지난 9일 찾은 대구 진월초등학교 신민철 교사와 만들어본 가상 사례다. 100% 허구는 아니다. 인공지능과 문답을 주고받으며 학습 영상을 추천받고 학생과 화상 미팅을 잡아주는 부분은 아직 실용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학생들의 학습 상태를 분석하고 교사에게 조언하는 시스템은 제한적이나마 일부 교실에서 활용되고 있다. 신 교사 역시 미국에서 개발된 인공지능 학습관리시스템 ‘칸 아카데미’로 5학년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수학은 3학년 때 배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4학년 과정을 따라가기 어렵고 5학년 때는 더욱 어려워진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꼼수로 일정 수준 점수를 유지해온 학생이라면 곧 한계를 드러내고 난관에 봉착하기 쉽다. 결국 수학에 흥미를 잃게 된다. 이런 수학의 특성상 인공지능과 협업이 효율적이다.

신 교사는 인공지능을 나침반 삼아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로 학생들의 오답을 분석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덧셈이나 뺄셈 같은 단순 연산 오류를 범하는 학생이라면 좀 더 차분하게 풀어보라고 주의를 준다. 비슷한 유형의 문항을 반복해 틀리는 경우라면 이전 학습 상황을 분석한다. 진단이 끝나면 학생을 불러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띄워 놓고 개별 상담을 한다. 즉석에서 개념과 원리를 다시 설명하고 얼마나 이해했는지 측정한다.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부분이라면 수업 시간에 다시 짚어 준다. 신 교사는 “예전엔 안갯속에서 수업했다면 인공지능을 활용하면서 객관화된 데이터로 아이들의 취약한 부분을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다. 그러면 교사는 학생들을 한 단계 위로 이끌어주는 역할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인공지능을 공교육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3월부터 준비한 초등 1, 2학년용 인공지능 학습관리시스템 ‘똑똑! 수학탐험대’를 지난 14일부터 전국 초등학교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전국 단위로 공교육에 인공지능을 도입한 첫 사례다.


신 교사가 쓰는 칸 아카데미와 흡사하지만 미국이 아닌 한국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차이점이 있다.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게임을 접목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학생이 게임 주인공이 돼 수학 문제를 풀어 멸종동물을 구하는 스토리를 입혔다. 학생들이 인공지능이 이끄는 게임으로 수를 익히는 동안 교사는 학습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분석 보고서를 받아본다. 교육부는 내년 초등 3학년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전체 초등 학년에 인공지능 학습관리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알파고’가 바둑 대국을 거듭할수록 똑똑해지듯 학생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교실의 인공지능도 강력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교실 경계가 무너진다

신 교사의 5학년 3반 교실은 크고 작은 모니터로 가득했다. 교단에는 대형 전자칠판이 있고 교실 앞뒤로 대형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모니터는 신 교사의 휴대전화, 학생들의 스마트기기와 연동돼 있다. 블렌디드 러닝(온·오프라인 융합 수업)을 위한 도구라는 설명이다. 그는 “집에서 하는 온라인 수업과 교실에서 이뤄지는 오프라인 수업의 경계를 허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신 교사의 수업은 다이내믹했다.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얼굴을 맞대고 수업을 하다가 모둠으로 나눠서 토론을 붙인다. 학생들이 개별 모둠에서 친구들과 토론하고 문서 공유프로그램을 활용해 자신의 의견을 작성하면 신 교사가 모둠을 돌면서 조언을 한다. 이날은 모둠별로 네티켓(인터넷 예절)을 주제로 발표 수업을 진행했다. 일부 모둠에서 네티켓을 지키지 않을 경우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대응하지 않는다”로 치우쳐 토론이 전개되자 신 교사가 개입했다. 욕설이나 일본식 표현을 이모티콘으로 자동으로 바꿔주는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고 있다는 뉴스를 공유하며 토론을 촉진하기도 했다.

블렌디드 러닝 외에도 교실 혁신은 여러 갈래로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구글 어스(위성사진 프로그램)로 전 세계 명소를 간접 체험하는 수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유행이 됐다. 앞으로는 가상현실(VR) 기술이 접목돼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학생과 교사가 어디 있든 유명 박물관이나 역사의 현장에서 생생한 미술·역사 수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정부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AR)을 접목한 교육 콘텐츠 개발을 예고한 상태다. 지역사회와 학교가 경계를 허물고 함께 학생을 가르치려는 시도 역시 눈에 띈다. 무엇보다 과거에는 이런 교실 혁신 사례들이 ‘유난스러운’ 교사들의 특별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코로나19로 학교 현장에서 조금씩 일반화되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라는 평가다.

대구=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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