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는 만년 하위팀으로 유명해졌다. 그래도 ‘부산갈매기’를 열창하는 열혈 부산팬들을 가진 구단이기도 하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롯데자이언츠도 한때 프로야구의 최고팀으로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2년 롯데자이언츠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때 30대의 나이로 팀을 이끌던 ‘롯데의 전설’ 송정규(67) 전 롯데자이언츠야구단 단장.
송 단장은 짧은 프로야구단 단장직을 그만두고 본업인 항만 도선사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2020년도 8개월이나 지나간 지금 갑자기 부산 야구팬을 중심으로 ‘송정규 신드롬’이 불어닥쳤다. 그의 신화가 담긴 영화의 제작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판 ‘머니볼(Money Ball)’. 할리우드 영화 머니볼은 빌리 빈이라는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어슬래틱스 단장이 어떻게 꼴찌팀을 강자로 만들어가는지 그린 영화다. 송 단장이 이끌던 90년대 초 롯데자이언츠, 그리고 그의 팀 운영전략은 빌리 빈의 스토리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롯데의 열혈팬들은 2년째 송 전 단장을 구단주로 데려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업이 운영하는 한국프로야구 구조상 힘든 일이지만 이를 알고도 팬들은 이런 청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영화 제작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내친김에 “송 단장을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 총재로 모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갑작스레 송정규 신드롬이 불어닥친 이유는 뭘까. 첫 번째는 ‘야구도시 부산’의 자존심이다. 부산을 연고지로 엄청난 ‘팬심’을 가지고도 롯데자이언츠는 팀 성적뿐 아니라 운영에서조차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이를 해결한 인물은 송 전 단장밖에 없다는 게 롯데팬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두 번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 상황인 한국프로야구 전체를 위해서라도 송 전 단장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남들보다 먼저 생각하고 혁신을 실천하는 인물이 야구계에는 그밖에 없다는 것이다.
송 전 단장은 1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 야구 열정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에 의욕을 보였던 복수의 영화사 가운데 한 곳을 골라 시나리오 저술 독점계약을 맺은 상태”라면서 “스크린 개봉을 겨냥한 영화나 모바일 온라인 보급을 위한 비스크린 영화를 제작할 것인가를 놓고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 야구팬들은 벌써 이 영화가 다 제작된 것인 양 들떠 있다. 롯데자이언츠의 가상 홈구장인 부산항 북항 인근 돔구장에서 첫 홈런이 나오는 장면이 영화의 시작일 것이라는 둥, 스마트폰으로만 볼 수 있는 모바일 온라인 영화로 제작될 것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어서다.
롯데팬들은 조만간 송 전 단장이 본업인 부산항 도선사를 퇴직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핫 에이지(Hot Age) 한국프로야구 부흥 역할론’을 들고 나왔다. 송 단장을 다시 야구장 그라운드로 불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송정규 신드롬은 지난해 7월 초 롯데자이언츠의 무기력한 경기가 계속되면서 시작됐다. KBS1TV로부터 “1992년 우승을 이끈 당시 단장이자 팬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저녁 9시 프라임 뉴스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인터뷰 후 “롯데 야구의 문제점을 속시원하게 잘 지적했다”는 격려의 글이 쇄도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야구를 좋아했던 송 전 단장이 ‘팬’에서 ‘단장’으로 야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드라마틱하다. 시작은 자비로 출판해 화제가 된 ‘필승 전략 롯데자이언츠 톱 시크릿(TOP SECRET)’라는 책에서 비롯됐다.
송 전 단장은 80년대 말부터 롯데가 하위권을 전전하자 팬의 입장에서 답답한 마음을 구단에 전했지만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는 직접 출판사를 만들고 90년 10월 전설적인 화제를 낳은 340여쪽 분량의 ‘필승 전략 롯데자이언츠 톱 시크릿’라는 책을 펴냈다.
때마침 책을 읽은 당시 신준호 구단주의 강력한 요청으로 91년 롯데자이언츠야구단 단장으로 스카우트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그의 나이 만 38세. 최연소 야구단장이었다. 연속 3년 최하위를 기록했던 롯데자이언츠는 그가 단장을 맡자마자 91년 4위, 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2년 연속 100만 관중 돌파에도 성공했다. 롯데자이언츠가 명실공히 한국 제1의 인기 구단으로 급부상한 것이었다.
그의 책에는 체계적인 야구단 운영 전략이 잘 다뤄져 있다. 그저 야구팬일 뿐이었지만 전문가를 뛰어넘는 야구 지식과 전략적 판단력이 들어 있었다.
30년 전 이미 야구를 통계학적,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를 처음으로 주창하기도 했다. 세이버메트릭스의 중요성과 선수들의 바이오리듬 체크, 필요할 경우 선수들의 심리치료까지 병행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회자되면서 한국프로야구를 발칵 뒤집었다.
롯데 승리를 갈망하는 부산 야구팬들의 바람이 지난해부터 송정규 신드롬으로 진화돼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알아볼 정도다. 한국프로야구의 부흥을 위한 송 전 단장의 조언이 롯데자이언츠가 아닌 다른 구단에 의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 송정규 前 단장
“코로나 침체 맞은 한국 야구… 변화·혁신 절실”
“한국야구위원회(KBO) 차기 총재를 맡아 대한민국 프로야구 부활의 깃발을 들어 달라는 야구팬들의 요청에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송정규 전 롯데자이언츠 단장은 1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지금의 한국 프로야구 흥미가 예년 같지 못한 게 사실”이라면서 “한국프로야구의 운영에도 혁신과 변화가 필요해 야구팬들이 계속 거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야구팬들의 요구는 송 전 단장이 한국인 최연소 상선 선장을 거쳐 일해 온 부산항 도선사를 조만간 떠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1991년 열혈팬에서 30대로 롯데자이언츠 단장에 취임한 송 전 단장은 이듬해인 92년 롯데 창단 후 두 번째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신화를 썼다. 그가 단장으로 있던 2년 동안 홈관중은 연속 100만명을 넘기기도 했다.
그는 “저를 과분하게 사랑해 주시는 팬들에게 고맙지만 현 총재께서 임기 중이시고, 훌륭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그분에게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칠까봐 염려스럽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제가 롯데자이언츠 구단을 이끌 당시 연간 100만명 관중이 몰려 입장권 암표 단속에 애를 먹을 정도였다”면서 “박진감 넘치는 프로야구로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고 선수 육성을 통한 글로벌경쟁력을 높여야 할 시기”라고 했다.
송 전 단장에게는 ‘한국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다. 우리나라 최연소 상선 선장에서 도선사 자리까지 올라가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해양경제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롯데자이언츠 단장으로 스카우트돼 불과 2년 만에 만년 꼴찌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주인공이다.
경남고와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미국 라스코 시핑에 삼등항해사로 취업한 뒤 이등항해사, 일등항해사로 잇따라 진급했다. 미국 스콜피오십매니저먼트에서 선장(대한민국 최연소 상선 선장 기록)이 된 후 87년까지 주로 해상에서 상선 선장으로 근무했다. 2000년 도선사시험에 합격해 일정 기간 부산항에서 도선 수습을 마친 후인 2001년부터 현재까지 부산항 도선사로 일했다. 해운항만 분야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송 전 단장은 상선 선장뿐 아니라 부산항 도선사회장, 한국도선사협회장, 부산항만공사 항만위원장, 한국해사법학회장 등을 최연소로 지낸 경력의 소유자다.
창원=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