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베’ 자리를 꿰찬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아베 신조 총리와 이념·정책적으로 가장 유사한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정치 명문가 출신인 아베와 혈혈단신으로 총리 자리까지 오른 스가는 차이점도 많다. 스가를 읽는 키워드는 ‘자조(自助·자기 발전을 위해 스스로 애씀)’다.
스가는 시골 마을인 아키타현 아키노미야촌 출신이다. 부친은 딸기 농사를 지었다. 장남인 그는 고교 졸업 후 가업을 이으라는 부친의 말을 따르지 않고 도쿄로 상경했다. 상경 후에는 골판지 공장에 취직했다가 인생을 바꾸겠다며 사립대학 중 학비가 가장 쌌던 호세이대 법학부에 진학했다. 졸업 후 잠깐 취직도 했지만 1975년 대학 선배의 추천을 받아 오코노기 히코사부로 중의원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된 것은 1996년으로 그의 나이 48세 때였다.
부친 등 가족으로부터 지역구를 세습받아 젊은 나이에 정치를 시작하는 경우가 40%에 달하는 자민당에서 스가는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스가 본인이 ‘의원 세습 제한’을 자신의 정치 의제로 삼은 적도 있다.
나카지마 다케시 도쿄공업대 교수는 자민당 주요 정치인들을 분석한 책 ‘일본의 내일’에서 “스가가 자조를 강조하는 이유는 ‘나는 산전수전 다 겪으며 맨몸뚱이 하나로, 내 힘으로 올라왔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스가는 총재 선거에 출마하면서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총리에 도전한다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민주주의를 보여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조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정책으로도 이어진다. 스가는 기본적으로 민간의 자율성을 높이고 개개인의 경쟁을 활성화하는 ‘작은 정부’ 노선을 추구한다.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비대한 기득권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을 개혁해야 한다며 집요하게 공격하는 것도 이 같은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뚜렷한 배경이 없는 스가는 정계에서 성과로 인정받아 왔다. 그는 일하는 정부를 위해서는 관료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관료를 움직이는 방법으로 인사권을 이용했다. 지난 2014년 스가 주도로 내각관방 산하에 고위 공무원 약 600명의 인사 실무를 맡는 내각인사국이 설립됐다. 스가는 이를 통해 관료들이 총리관저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기는 ‘손타쿠’(윗사람 의중을 헤아려 행동함) 문화를 정착시켰다.
아베는 ‘좌익 반대’ ‘일본의 2차대전 책임을 강조하는 자학적 역사관 반대’ 기치를 내걸어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이데올로기 중시형 정치인이었지만, 스가는 이념적 색깔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념형이라기보다 뒤에서 일하는 실무형·참모형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대중과의 소통에 능하고, 대중의 욕망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는 것도 스가의 특징이다. 고속도로 통행료, NHK방송 수신료, 휴대전화 요금 인하 등을 추진하며 여론을 자기 편으로 돌리는 데 능한 면모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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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