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허술한 수사로 인해 타살 가능성이 있는 병사가 ‘총기 난사 사건’의 주범이 되고, 오발탄으로 인한 사망이 ‘총기 자살’로 둔갑한 사실이 수십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14일 공개한 ‘2020 조사활동보고회’ 보고서에서 이런 내용의 조사활동 경과를 보고했다.
위원회는 1948년 11월 30일부터 2018년 9월 13일까지 발생한 군 사망사고를 대상으로 진정사건을 접수했다. 2018년 9월 14일부터 이날까지 2년간 총 1610건이 접수됐고 그 가운데 450건에 대해 조사를 완료했다. 450건 중 기각, 각하, 취하·종료 등을 제외한 223건에 대해 진상규명이 이뤄졌다. 사망 원인별로는 자해가 137건으로 가장 많았고 사고사(48건), 병사(34건), 타살(3건), 불상(1건) 등의 순이었다.
위원회는 타살, 사고사가 자해 사망으로 잘못 결론내려진 사실을 다수 확인했다. 1989년 사망한 유모 상병은 당시 헌병대(현 군사경찰) 수사 기록에 ‘총기 난사 후 수류탄 자폭 사망’한 것으로 기재돼 있었다. 위원회는 그러나 헌병대가 유 상병의 총이 아닌 난사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A씨의 총만 발사됐다는 총기감정 결과를 수사에서 누락한 사실을 확인했다.
1963년 사망한 황모 병장의 경우 군 기록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스스로 총으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돼 있었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부대에서 2시간 거리인 사격장까지 이동해 자살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 점, 사망 당일 총기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부대원 진술 등을 토대로 조사를 벌여 황 병장이 야간 사격훈련장에서 오발된 총기에 의해 사고사한 것으로 진상규명했다.
위원회는 접수된 나머지 사건에 대해서는 사전조사 및 본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특별법상 출범한 위원회의 활동 기한은 내년 9월이어서 조사 기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위원회는 법 개정을 통해 조사 기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