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윤석열은 정치를 하게 될까

입력 2020-09-15 04:04

윤석열 검찰총장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지금처럼 정권의 ‘전방위 압박’이 계속되면 임기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윤 총장의 임기보다 윤 총장의 정치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진다. 윤 총장 본인도 정치를 고민하고 있다는 정황이 언론에 포착되고 있다.

검사 윤석열이 정치인 윤석열로 변신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어려운 길이다. 윤 총장이 주목받는 것은 지지율과 스토리라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올해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 총장은 1~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갤럽 조사는 후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주관식 조사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의 양강 구도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3위 후보다. 윤 총장 지지율은 60대 이상, 국민의힘 지지층, 대구·경북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다. 정치공학적으로 그림을 그려볼 만한 구도다.

윤 총장은 한국 정치인에게 필요한 스토리도 갖췄다. 상명하복이 철저한 검찰 내에서도 강골로 유명했고, 박근혜정부 시절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수사를 밀어붙였다. 문재인정부 초기에는 적폐 수사를 총지휘하며 전직 대통령·대법원장·국정원장을 구속 기소했다. 그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로 정권과 갈등을 빚으며 적폐로 몰렸다. 강골 검사, 토사구팽 스토리다. 하지만 지지율과 스토리는 양날의 칼이다. 윤 총장 지지율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반발 심리의 표현이다. 윤석열이 좋아서라기보다 문재인 정권이 미워서 형성된 인기다.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윤 총장이 ‘정권에 탄압받는 검사’겠지만, 반대쪽에서 보면 윤 총장은 검찰 기득권을 지키려는 ‘조폭 검찰의 두목’일 뿐이다.

윤 총장이 정치에 나서면 대략 세 가지 길이 있다. 내년 4월 재보선에 출마하거나, 2022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돕거나, 스스로 대선에 출마하는 길이다. 모두 가시밭길이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 내부에 윤 총장을 영입하거나 추대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차기 대선 역할론은 윤 총장의 선배 안대희의 길이다. 16대 대선 자금을 수사했던 안대희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대법관을 거쳐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돼 박근혜 후보 옆에 섰다. 이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사퇴했고, 2016년 20대 총선 서울 마포갑에서 낙선했다. 안대희의 정치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총장은 가장 중립적이어야 하는 자리”라며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중립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고,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역대로 봐도 인기투표식 정치는 다 실패했고, 정치적 성과 없이 핍박받는 이미지로는 오래갈 수 없다”고도 했다.

정치에 뛰어든다는 것은 비전을 제시하는 행위다. 정치인 윤석열이 국민 앞에 내놓을 비전은 ‘정의로운 나라’ ‘공정한 나라’ 정도일 것이다. 아쉽게도, 대한민국에서 검사라는 직업은 국민이 공감할 만큼 정의롭고 공정한 이미지가 아니다. 정의와 공정의 대국민 설득력이 떨어지고, 작은 흠집도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이 이후 정치를 할 수도, 변호사를 할 수도, 야인으로 머물 수도 있다. 아마 본인도 정확하게 모를 것이다. 다만 관전자 입장에서 ‘윤 총장이 떠나기 전 조국표 검찰 개혁, 추미애표 검찰 개혁이 아닌 윤석열표 검찰 개혁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은 해본다. 지금 검찰 상황을 보면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런 불가능이 현실이 되면 정쟁에 지친 국민을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조 전 장관은 취임 한 달 만에 검찰개혁안을 발표했다. 윤 총장에게는 아직 10개월이 남아 있다.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