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해 살지 말고 ‘절대 순종’하며 사명 위해 살라”

입력 2020-09-15 00:06
박정곤 거제 고현교회 목사가 지난 12일 교회 입구에 설치된 요한계시록 22장 말씀을 상징화한 작품 앞에서 선교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박 목사는 현재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과 미전도종족선교연대(UPMA) 이사장을 맡고 있다.

경남 거제 고현교회 주변에는 시청 세무서 농업기술센터 공설운동장이 있다. 2001년 고현교회에 부임한 박정곤(62) 목사는 4년 만에 교회건축에 착수했다. 1만3895㎡(4203평) 대지에 8247㎡(2495평)의 본당, 4122㎡(2495평)의 교육관을 세웠는데, 150억원 규모의 공사였다.

750여명이 모였던 교회는 박 목사 부임 이후 3000여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커졌다. 그러나 2007년 11월 ‘불청객’이 찾아왔다. 당회원 14명 중 6명이 박 목사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박 목사는 “다른 교회 분쟁사례는 들었지만, 내가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영적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갑자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니 우는 사자와 같은 사탄마귀의 총공세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반대세력의 공격 앞에 그가 선택한 것은 기도였다. 박 목사는 “갑작스러운 사임 요구를 받고 40일 작정 기도에 들어갔는데, ‘주님 뜻이라면 미련 없이 사임하고 미자립교회든, 타 교회 부목사든, 선교사든 뭐든지 맡겠습니다. 다만 주님의 뜻만 보여주세요’라는 것이 기도 제목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너와 고현교회를 통해 할 일이 있다’는 기도 응답을 받았다. 하지만 응답을 붙든 대가는 혹독했다. 악성루머가 돌고 3년간 10건의 고소·고발이 있었다. 상대는 용역까지 동원해 예배를 막았다. 기습 테러에 대비해 방검복(防劍服)을 입고 다닐 정도였다. 당회를 하면 새벽 1시를 넘기는 마라톤 회의가 일쑤였다.

박 목사는 “고난의 시기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철야기도회를 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했다”면서 “경찰서와 검찰을 오가면서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부터 찾았다”고 했다. 이어 “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땐 ‘금식기도 때 제발 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기도와 인내로 난관을 돌파했다. 분쟁 중 열린 전도축제에 1216명이 등록할 정도로 영적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그는 “주변에선 반대 측의 제안대로 유학을 가거나 교회개척을 하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분명했기에 그럴 수 없었다”면서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던 비결이 뭔지 아느냐. 요셉이 사람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신앙을 회복하면 교회는 물론 사회문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분쟁은 2008년 4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총회 재판국 판결로 마무리됐다. 반대 측은 교회를 떠났다. 현재 고현교회는 250개의 농어촌 미자립교회와 540명의 선교사를 후원하는 선교지향적 교회로 자리를 잡았다.

박 목사는 자신을 ‘신앙의 흙수저’라고 했다. 경남 창원 내곡리 산골 마을에서 자란 그는 1973년 중학교를 중퇴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마산 부림시장에서 일하다 북마산감리교회 부설 웨슬레고등공민학교에 진학하면서 교회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예장고신 소속 제4문창교회에서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74년부터 주기철 목사가 기도하던 마산 무악산 십자가바위에서 기도했다.

고현교회 예배당과 교육관.

아무런 교회 연고도, 후원자도 없었지만 박 목사는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살겠다. 나에게 주신 자유의지마저 주님께 드리겠다”는 목양일념으로 84년 고신대 신학과에, 89년 고려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박 목사는 “89년부터 서마산교회 중고등부를 맡았는데, 120명이던 학생이 6개월 만에 350여명으로 늘면서 성령의 강력한 부흥을 경험했다”면서 “그때 신앙과 학업을 무척 강조했는데, 서울대만 5명이 합격해 마산지역에서 유명세를 떨쳤다”고 했다.

서울시민교회 부교역자, 광주 광산교회 담임 등 부임하는 곳마다 부흥을 경험했다. “주님 앞에 전적 헌신, 절대 순종, 절대 순수의 삶을 살겠다”는 원칙을 목회 현장에서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가 부교역자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두 가지다. “생존을 위해 살지 말고 사명을 위해 살라”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진실해야 쓰임 받는다.” 박 목사는 “많은 목회자와 선교사가 ‘세상 부귀 명예를 다 버리고 오직 주를 위해 살겠다’며 일꾼이 됐지만, 정작 다음 단계인 자녀교육 문제 앞에서 흐트러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하나님의 명령 앞에 ‘더 내려놓음’이 아니라 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 목회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코로나19 시대에도 전도가 되고 교회도 부흥합니다. 2000년 교회사를 봤을 때 지금보다 훨씬 냉혹한 시기도 많았습니다. 혼란의 때 목회자가 할 일은 반나절이라도 휴대전화를 끄고 산기도와 말씀, 독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박 목사는 “코로나19로 목회패배주의에 빠진 이들이 여럿 보인다”면서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해 말씀을 연구하고 성령님을 사모하며 부르짖고 전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음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이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거제=글·사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