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갱신 요구 땐 집 사도 입주 못해”… 실수요자 날벼락

입력 2020-09-14 04:06
13일 서울 송파구 서울스카이(제2롯데월드)에서 지켜본 아파트 단지 모습. 정부가 졸속으로 시행한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세입자의 계약 만료에 맞춰 아파트를 구매한 실수요자가 집에 못 들어가는 황당한 일이 벌어져 많은 비판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법) 개정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야 내놓은 늑장 유권해석으로 실수요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임대차 계약 만료를 앞둔 주택 매수와 관련, 임차인(세입자)이 기존 임대인에게 전월세계약갱신 요구를 했으면 매수인(새 임대인)이 집을 사도 입주를 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부가 한 달 전에는 이와 상반된 해석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정부의 말바꾸기로 인해 전월세 만료를 앞둔 주택을 매수하려 했던 실수요자들이 황급히 새로운 전월세를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실거주를 위해 집을 사도 정부 방침으로 못 들어가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는 지난 11일 “실거주를 이유로 한 계약갱신 거절 가능 여부는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 당시 임대인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매수인이 해당 주택의 소유권을 이전받은 뒤 세입자가 갱신 요구를 하면 매수인은 임대인 지위를 얻기 때문에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의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지만 소유권 이전 전에 세입자가 기존 임대인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했으면 매수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 거절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국토부는 지난달 2일 설명자료에서 “집주인이 임대를 놓은 상황에서 주택을 제3자(매수인)에게 매도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계약갱신청구권이 시행돼도 집주인이 해당 주택에 실거주하려는 경우에 한해 계약갱신 거절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한 달 새 같은 사안을 두고 정반대 해석을 한 격이 됐다.

국토부 설명에 따라 세입자 계약 만료 시점에 맞춰 실거주 목적으로 주택 매매에 나선 이들은 졸지에 ‘세입자 계약 갱신’이라는 복병을 만난 셈이다. 정부의 유권해석이 계약서 체결부터 소유권 이전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주택 매매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에 대한 의사를 바꿨을 때 임대인이 속수무책이라는 점도 문제다. 개정 임대차법에 따르면 세입자가 이미 계약 만료 기간에 맞춰 나가기로 합의했어도 계약 만료 6개월에서 한 달 전까지는 이를 번복하고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최근 세입자가 사는 주택을 매수한 A씨는 13일 “집을 볼 때만 해도 계약갱신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하던 세입자가 갑자기 말을 바꿨다”며 “계약 갱신을 요구하지 않는 대가로 1000만원을 요구하기까지 해 황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의 유권해석으로 앞으로 매매 시장은 물론 전세 시장까지 ‘매물 잠김’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입자가 사는 집이 매매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거나 집주인들이 자신의 재산권 행사에 방해가 되지 않을 지인이나 친척에게만 세를 주는 식으로 전세 공급마저 줄일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유권해석이 재산권 침해 소지가 큰 데다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제 민사소송에서 뒤집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