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에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은 최모(36)씨는 암 수술법 선택을 놓고 고민이 생겼다. 암이 항문에서 겨우 6㎝ 떨어진 곳에 위치해 수술하다 자칫 항문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수술 부위에 배뇨나 성 기능 관련 장기들도 붙어있어 혹시 건드릴까 걱정이 됐다. 의사는 좁은 골반 공간에서 정교한 절제가 가능한 로봇 수술을 권했다. 항문 보존이 가능하다고 했다. 실제 로봇 수술 후 지금까지 재발이나 전이는 물론 특별한 합병증 없이 생활하고 있다.
폐암 1기 판정을 받은 임모(66)씨도 암 크기가 2.1㎝로 비교적 작아 로봇 수술을 택했다. 갈비뼈를 절개해 가슴을 여는 기존 개흉수술이나 갈비뼈 사이 피부를 째고 내시경 장비를 집어넣는 흉강경 수술에 비해 흉터와 통증, 합병증이 훨씬 적고 회복이 빠르다는 점이 마음을 움직였다.
로봇 암 수술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초창기엔 전립선암과 신장암, 자궁암 등 주로 골반부 장기의 암 수술에 로봇이 활용됐지만 갑상샘암 위암 대장암 췌장암 유방암 폐암 두경부암 등 여러 암종으로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로봇 수술이라 하면 의사가 아닌 자동화된 로봇이 혼자 척척 수술하는 걸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의사가 멀리 떨어진 전용공간(콘솔)에 앉아서 고화질 영상을 보며 직접 손으로 로봇팔에 장착된 기구를 움직여 수술하는 방식이다. 복부나 옆구리 등에 2~6개의 작은 절개창(구멍)을 내서 수술한다. 로봇 장비는 1999년부터 전 세계에 보급된 ‘다빈치 시리즈’가 활용된다. 최근엔 구멍 한 개로도 수술 가능한 로봇 플랫폼(다빈치SP)도 도입됐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에선 연간 9000건 이상의 로봇 암 수술이 이뤄지고 있다. 매년 5~10%씩 증가 추세다. 대표적으로 전립선암(전립선절제술)의 79%, 신장암(부분신장절제술)의 58%가 로봇 수술로 시행된다. 자궁내막암 등 부인암과 직장암, 갑상샘암(갑상샘절제술)은 각각 10% 정도를 로봇이 집도하고 있다. 폐암은 아직 1~2%에 그치고 있지만 조금씩 늘고 있다.
로봇 수술은 암이 깊숙이 위치해 개복수술로도 시야 확보가 어렵고 기구 조작이 쉽지 않은 부위를 수술할 때 빛을 발한다. 3D영상으로 수술 부위를 실제보다 최대 10배 확대해 볼 수 있고 손떨림이 적어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다. 최소 절개로 흉터와 감염, 합병증이 적고 회복이 빠른 것도 장점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비뇨의학과 김종욱 교수는 “같은 최소 침습수술법인 복강경 수술은 보통 작은 겸자(수술용 집게)를 부착한 40㎝ 이상의 긴 수술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기구 끝부분의 정확도는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경우보다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면서 “반면 로봇 수술은 의사의 손목과 손가락 움직임을 최대한 동일하게 로봇팔의 기구에서 구현함으로써 마치 축소된 손으로 수술 부위를 조작하는 것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목 기능이 있는 로봇팔은 상하좌우 회전이 가능해 사람 손으로 닿기 어려운 장기나 골반 같은 좁은 공간에서 섬세한 움직임이 필요한 수술에 유용하다”고 덧붙였다.
폐암은 로봇 수술 도입이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국내 20개 이상 기관이 로봇 폐암 수술을 시행하고 있지만 고려대 구로병원과 서울대병원이 선도하고 있다. 특히 고대 구로병원은 2개의 구멍만으로 로봇 수술을 시행해 주목받고 있다. 1.2㎝ 구멍에 한 개의 로봇 기구를 넣고 3~4㎝구멍에는 로봇 내시경과 또 다른 로봇기구를 같이 넣어 수술한다. 좌우 로봇팔이 한 쪽은 조직을 잡고 다른 한쪽은 조직을 분리·절제한다. 폐암 로봇 수술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4~5개의 구멍을 뚫어서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병원 흉부외과 김현구 교수는 2017년 아시아 최초로 로봇 수술 장비만 이용한 폐암 수술에 성공했다. 지난해 70건 이상의 폐암 로봇 수술을 집도해 국내 최다를 기록했다. 기존 폐암 로봇 수술법의 경우 심장과 연결된 큰 폐혈관이나 기관지 같은 중요 조직의 절제와 봉합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수술을 중단하고 흉강경 기구를 별도로 넣어 처리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김 교수는 최근 개발된 ‘자동봉합기(엔도리스트)’를 로봇팔에 장착해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김 교수는 “로봇 수술 장비만으로 폐암 조직 뿐 아니라 주변 미세 조직 절제와 봉합까지 단번에 할 수 있어 더 정확하고 안전한 수술 집도가 가능해졌다”고 했다. 다만 폐암 크기가 5~6㎝ 이상이거나 심한 늑막 유착이 있을 경우엔 개흉수술을 받아야 한다.
대장암 중에선 직장암에 로봇 수술 적용이 활발하다. 직장암의 경우 항문 괄약근 등과 가깝게 연결돼 있어 수술 시 주의가 필요하다. 재발이 적고 항문 보존이 가능한 수술법 선택이 중요하다. 대장항문외과 민병욱 교수는 “직장이 위치한 골반강은 매우 협소하고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암이 먼저 퍼지는 림프절은 물론 요관, 정낭, 전립선, 혈관 등 배뇨·성기능과 관련된 자율신경들이 모여있어 수술 시 이 구조물들을 최대한 보존해야 수술 후 기능적 합병증을 줄일 수 있다”면서 “이런 점에서 정밀한 로봇 수술의 활용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자궁내막암 등 부인암이나 전립선암 영역에서의 로봇 수술은 일찍이 자리잡았다. 산부인과 홍진화 교수는 “최근엔 구멍 한 개만으로도 암 제거가 가능한 단일공 로봇 수술이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고 했다.
초기 전립선암과 자궁내막암 직장암 등의 로봇 수술 후 5년 생존율은 90% 이상으로 보고되고 있다. 폐암 로봇 수술의 경우도 수술 후 30일 생존율, 재입원율, 재수술, 부작용 등 측면에서 흉강경 수술과 비슷하거나 우월하다는 연구논문이 나와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