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억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강단 있는 정치인’이었다. ‘추다르크’라는 별명에 걸맞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는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2009년 야당 소속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에는 노동관계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을 몰아내고 여당 의원들과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강단을 보여줬다. 헌정 사상 최초 지역구 5선 여성 정치인의 타이틀을 가졌고, 2017년에는 당대표로서 정권 교체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지금도 그의 페이스북에는 ‘휘어지면서 바람을 이겨내는 대나무보다는 바람에 부서지는 참나무로 살겠습니다!’라는 글이 있다. 몸이 부서질지언정 모진 풍파에도 대의를 지키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래서 그가 올 초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을 때 조국 전 장관보다 훨씬 더 검찰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것 같았다. 검찰 길들이기 등 여러 비판이 있지만 추 장관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이 대의라고 생각하는 ‘검찰 개혁’을 고집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최근 아들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소위 ‘아들 황제 복무 의혹’이다. 이 사건의 진실 여부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휴가가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청탁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선 추후 검찰 수사로 가려질 일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추 장관 입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소설을 쓰시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판사 출신이고 집권 여당 당대표 출신이라서 그런지 추 장관은 최근 부쩍 상대를 하대하는 경향이 많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내 명을 거역했다” “지시를 잘라먹었다” “수명자” 등 왕조시대에나 나왔던 단어를 썼다. 이전에도 그랬다는 설이 있고, 검찰이라는 덩치 큰 상대를 만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주변에서 “추 장관이 이렇게 권위주의적인 인물이었나”라는 말이 나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가 울고 있다”는 말은 윤 총장을 향한 발언과 오버랩돼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과 가족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요즘 청년들이 ‘황제 복무 의혹’에 대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그 이면에는 이런 추 장관의 ‘내로남불’식 처신이 자리잡고 있다. 조 전 장관이 욕을 먹고 있는 이면과도 비슷하다. 국민들은 조 전 장관이 불법을 저질렀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가 이전에 SNS에 했던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다는 점에 분개해한다. “소설을 쓰시네”라는 말은 쓸데없이 야당을 자극했다. 자신은 감싸고 남은 깎아내리는 언사로 들린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추 장관에 대해 큰 실망을 하고 있다. 이 사건은 제2의 조국 사태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조국 사태는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큰 생채기를 내고 있다. 여야, 언론, 국민이 서로 적과 동지가 돼 끝없는 소모전을 펼치고 있다. 벌써부터 여당은 추 장관 감싸기를 하고 있고, 야당의 폭로는 불을 뿜고 있다. 언론도 가세했다. 국민들도 둘로 갈라질 조짐이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검찰 개혁 저항의 일환으로 보기도 한다. 한 번 물러서면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는다는 의견도 있다.
다행인 점은 추 장관이 13일 “아들의 군 복무 시절 문제로 걱정을 끼쳐드려 국민께 정말 송구하다”고 사과한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그게 좌고우면하지 않는 추 장관의 이미지와도 맞는다. 이제부터는 상대를 무시하는 발언을 삼갔으면 한다. 자신에 대해선 엄격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그 후 대의라고 생각하는 검찰 개혁에 매진했으면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모규엽 사회부 차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