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새벽 인천 을왕리에서 치킨배달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딸 A씨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사과글을 올려야 했다. 주문한 치킨을 받지 못한 고객이 자초지종을 모른 채 올린 항의글에 “그 치킨을 배달하러 가던 아버지가 참변을 당했다. (배달해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고 10일 답글을 남겼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던 중이었다. 갑자기 부친을 여읜 황망함 속에서도 가족 생계를 지탱해온 가게의 평판을 먼저 걱정해야 했기에 이런 안타까운 장면이 벌어졌다. A씨의 답글을 본 고객은 곧바로 항의글을 내렸다.
A씨 아버지는 9일 오전 0시53분쯤 인천 중구 을왕동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마주오던 벤츠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이날 영업의 마지막 배달지로 향하던 길이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8%를 훌쩍 넘긴 만취상태였다.
이 사고는 코로나 재확산에 폭증한 주문을 살얼음 같은 위험 속에서 감당해내고 있는 배달요식업 종사자들의 처지를 드러냈다.
A씨는 이튿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그날따라 저녁부터 주문이 많아서 아버지가 저녁도 못 드시고 마지막 배달이라며 가셨다”고 당시 바빴던 상황을 설명했다.
A씨 아버지처럼 배달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경우는 계속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자는 전년 동기 대비 13.7% 늘었다. 같은 기간에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가 10%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급격한 상승세다. 경찰은 코로나19 사태로 배달 수요가 폭증한 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주문이 늘어난 만큼 배달원들이 사고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음주운전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A씨는 “아빠는 본인 가게니까 책임감 때문에 가게 시작 후 계속 직접 배달을 했다. 살인자가 법을 악용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A씨가 올린 청원은 11일 오후 5시 현재 40만여명이 동의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약속했다. 김 청장은 “갑작스레 가장을 떠나보낸 청원인과 유족의 아픔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토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가해차량 운전자 구속영장을 신청한 인천지방경찰청은 역시 만취상태였던 동승자도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운전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14일 인천지법에서 열린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