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답사(答辭)

입력 2020-09-10 19:59

나는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대에서 내려갈 때까지 오로지 나는,
이 한마디 말씀으로 퇴장할 것입니다
내가 드리는 가슴 벅찬 고백이
살구나무 물오를 때 끌어안는 말씀이든
텅 빈 들녘, 저물 때 손을 젓는 말씀이든
아무 쪽이나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겨우 견딜 만한 이 땅의 어지럼증
거친 파도에 휘말리는 섬과 섬으로
동행하게 된 것만도 눈물겹습니다
하루해 보내고 이부자리를 펼 때
두 다리를 뻗고 전등을 끌 때
다시 하고 싶은 말, 감사합니다

이향아 시집 ‘캔버스에 세우는 나라’ 중

언제가 내려갈 인생의 무대에서 시적 화자가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뿐이었다. 내려가는 순간의 벅찬 감회나 아쉬움이 앞설 법도 하지만 주위에 감사 인사를 남기는 것이 전부다. 생의 어지럼증에 적응하기까지 동행한 이들을 향해 남기는 짧지만 속 깊은 답사가 뭉근한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