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적어 개인레슨?… 국공립 예술단원 ‘영리활동’ 도마에

입력 2020-09-11 04:04
최근 서울시향과 국립국악원 단원의 ‘개인레슨’이 코로나19 역학조사 과정에서 연이어 드러나면서 국공립 예술단원의 겸직 문제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예술계에서는 단원 겸직 문제에 대해 유연하게 접근하면서 방만한 단체 운영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시향·국립국악원 제공

최근 서울시립교향악단·국립국악원 단원의 ‘개인레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역학 조사 과정에서 잇따라 드러나면서 국공립 예술단체 단원의 ‘겸직’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영리활동이 금지된 국공립 예술단원의 개인레슨을 포함해 신고하지 않은 외부 활동을 눈감아주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겸직 규정을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국공립 예술단원의 개인레슨이 만연했지만 용인됐던 이유는 ‘임금’이 적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 본보의 개인레슨 보도 이후 예술계는 “급여가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많은 국공립 예술단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금에 대한 단원들의 생각과 일반 국민의 정서가 많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술단체마다 상급기관과 재단법인화 여부 등에 따라 급여 수준이 다르지만, 평균적으로는 일반 공무원과 비슷하다. 공무원에 준해 급여가 책정되어서다. 하지만 프로 연주자가 되기까지 재정적·시간적으로 많은 투자가 이뤄진 만큼 음악계에선 이를 적다고 본다.

이번에 개인레슨 문제가 불거진 국립국악원은 정단원 기본연봉이 공무원 8급에 준하는 초봉에서 시작돼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방식이다. 여기에 다른 국공립 예술단체와 마찬가지로 공연(연주) 수당이 더해진다. 2020년 기준으로 국립국악원은 전체 511명의 인건비 예산이 약 229억원으로 1인당 평균 연봉은 약 4477만원에 달한다. 국내 교향악단 가운데 예산 규모가 적은 편으로 알려진 경기필하모닉만 하더라도 단원과 직원을 포함한 105명에 인건비 45억원이 배정돼 있다. 반면 서울시향은 국내 국공립 예술단체 가운데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곳으로 1인당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다. 2020년 기준 지휘자·단원·직원 등 131명의 인건비로 140억원이 배정돼 있다.

다만 개인레슨 문제가 불거진 후 음악계에서는 국공립 예술단체 단원의 겸직 금지 조항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해외에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겸직 활동을 인정하고 있어서다. 지난해까지 독일 울름시립극장 수석지휘자를 지냈던 지휘자 지중배는 “유럽 악단은 연주와 연습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개인레슨과 출연·출강 등 영리 활동에 굉장히 관대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공공 지원을 받는 유럽 오케스트라와 달리 민간 후원에 주로 의존하는 영국과 미국에서는 단원의 영리활동이 더 빈번하다. 개인레슨 등 단원의 겸직 허용이 음악교육에 일조한다는 평가도 있다. 지 지휘자는 “유럽에서는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학생·아마추어 연주자의 교육도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해외와의 단순비교로 국내에서도 겸직을 허용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기본적으로 해외 국공립 예술단체 단원은 조직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반면 입시 및 취업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는 국공립 단원의 레슨 수요가 폭발적이어서 주객전도의 위험성이 높다. 클래식계 관계자는 “서울시향 단원이란 타이틀로 레슨비가 달라지는 게 현실”이라면서 “최근 개인레슨 문제가 불거진 후 학부모들 사이에선 레슨비가 올라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예술계 시장이 좁은 탓에 개인레슨은 유착의 온상으로도 여겨져 왔다. 레슨으로 아티스트와 인연을 맺어야 국공립 예술단체 취직이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흔하게 들린다. 개인레슨으로 인한 탈세 문제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개인레슨을 무작정 허용하면 세금으로 양질의 시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국공립 예술단체의 공공성이 흔들릴 우려가 크다. 국민정서상 단원 영리활동 허용 이전에 예술성 추구라는 기본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다른 공공 단체 직원과의 형평성에서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국공립 예술단원의 영리 목적 겸직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기존의 종신 고용을 포기하고 국립극단처럼 시즌 계약제로 단원을 운영하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오래전부터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제대로 된 단원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종신고용이 국공립 예술단체의 기량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장광열 무용평론가는 “국공립 예술단체의 개혁 필요성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문제일 것”이라면서 “무용의 경우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이기에 정년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해외에선 찾아볼 수 없다. 한국에선 작품을 만들려면 단원이 있어도 외부에서 젊은 무용수들을 데려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시즌 계약제는 단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다 예술단체 역량 안정화 측면에서도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재정 규모나 운영 방식이 예술 장르별, 조직별로 다른 만큼 단체마다 운영 방침에 맞춰 겸직 조항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병행론’도 나온다. 안호상 전 국립극장장은 “일관된 원칙을 세우기보다는 단체에 따라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오병권 전 사장은 “이번에 드러난 개인레슨 문제를 계기로 논의를 통해 국공립 예술단체 직무에 관한 틀을 아예 새로 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