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유서입니다” 항공업계 잇딴 자살 암시글 초비상

입력 2020-09-11 00:03 수정 2020-09-11 00:03
이스타항공 노조가 지난 9일 오전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 늦은 저녁 이스타항공 노조에 비상이 걸렸다. 오후 8시쯤 회사 직원들만 볼 수 있는 모바일 앱 블라인드에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이 올라와서다.

‘유서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본인을 여성 승무원이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너무나도 꿈꿨던 비행 일을 하면서 행복했다”고 했다. 이어 “어제부로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현실 직시가 안 된다. 계속 술만 마시고 있다”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된 후 재매각을 추진 중인 이스타항공은 최근 직원 605명을 해고한 바 있다.

박이삼 조종사노조위원장은 10일 “다행히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다”며 “혹시라도 실직자 중 1명이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어젯밤부터 가슴을 졸이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가 항공업계를 덮쳤다. 이스타항공을 중심으로 실업대란이 현실화하자 항공사 오픈 채팅방이나 게시판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항공업 종사자들의 재취업과 심리 상담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11일 직원들에게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자’는 내용의 안내문을 배포할 예정이다. 박 위원장은 “7개월째 월급을 못 받고 결국 해고된 직원들이 극도로 우울함을 호소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찮다”며 “심리상담센터 안내와 함께 동료를 챙겨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순환·무급휴직으로 버티고 있는 다른 항공사 직원들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박종익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람은 일을 통해 스스로가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자기 효능감’을 느낀다”며 “감염병으로 인한 휴직·실직이라고 해도 자신이 무능력하거나 도태됐다는 생각이 우울증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항공업의 경우 서비스업 등 다른 업종과 달리 불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감염병이 끝나도 해외여행은 전처럼 가기 힘들 것”이라며 “불행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무망감(의욕없음·hopelessness)에 빠질 위험도 크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항공업 종사자를 위한 재취업, 생활비 지원 등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항공업황 회복은 단기간 이뤄질 게 아니다”며 “심리적 상담을 통해 종사자들의 상실감을 위로해주는 동시에 경제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