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정은경은 벌고 추미애는 까먹고

입력 2020-09-11 04:03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차곡차곡 벌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한 방에 까먹는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이야기다. 인상 비평이 아니라 실제 수치가 그렇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의 압도적 이유는 ‘코로나19’ 대응이다. 부동산 문제로 주춤했던 문 대통령 지지율은 코로나19 방역으로 회복됐다. 코로나 최전선에 정 본부장이 있다. 추 장관이 신문과 방송 전면을 장식하면 문 대통령 지지율은 추락한다. 리얼미터가 10일 발표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지난주보다 2.4% 포인트 떨어진 45.7%였다. 20대에서 5.7% 포인트, 남성에서 9.0% 포인트 내렸다. 추 장관 아들이 불붙인 ‘황제 휴가’ 논란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소설 쓰시네.” 국회의원 질의를 비웃는 표정은 추 장관의 얼굴에 자리잡았다.

추 장관과 정 본부장 모두 문 대통령이 임명장을 준 공직자다. 추 장관은 올 1월 취임했고, 정 본부장도 그즈음 코로나19 대응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 정부 안에서 이렇게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캐릭터의 두 공직자가 함께 조명을 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여권에서는 추 장관의 독불장군 캐릭터가 사건을 키웠다고 보는 분위기다. 똑 떨어지는 위법 행위는 없는데, 추 장관의 안하무인 태도가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추 장관이 야당 의원에게 ‘소설을 쓴다’고 하면서 이 사달이 벌어진 것 아니냐”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SNS와 상반된 행동으로 사람 열 받게 한 것과 똑같다”고 했다. 추 장관을 잘 아는 다른 여권 관계자도 말했다. “누가 말리겠는가. 그분은 말리면 더 해결이 안 된다.”

그래도 누군가는 말려야 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여론이 뭐라 하든 내버려두는 건 정치가 아니다. 임명장을 준 대통령이든, 내각을 통할하는 정세균 총리든, 차기 대선 주자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든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꼭 공개된 방식이 아니더라도, 물밑에서라도 추 장관의 처신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추미애 리스크’는 다른 모든 국정 현안을 삼키고 있기 때문이다.

“추미애 장관의 ‘추’자도 나오지 않았다.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의 ‘추’만 나왔다.” 청와대는 9일 문 대통령과 이 대표 등 당 지도부 간담회에서 추 장관에 대한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여러 언론이 비슷한 질문을 되풀이한다는 건, 추 장관 사안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고 논의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간담회에서 그 이야기가 쏙 빠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런 말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에 오기 직전 이 대표는 ‘포털 갑질’ 논란을 일으킨 윤영찬 의원에게 공개 경고장을 날렸다. 당대표가 선출된 의원에게 “언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질타할 수 있는데,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장관에게 비공개 주의도 줄 수 없다는 말인가.

추 장관 문제가 국정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을 때 정 본부장은 초대 질병관리청장에 내정됐다. 정 본부장은 “질병관리청 확대 개편은 코로나19를 빨리 극복하고 신종 감염병 대응을 체계적으로 하라는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국민 지지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추 장관이 ‘검찰 개혁’을 한다며 검찰총장과 치고받고 싸우고, 아들 문제로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힐 때 정 본부장은 조용히 코로나19 대응에 전념하고 있다. 호통치고 싸우는 법무부 장관, 소통하며 그저 제 일을 하는 질병관리본부장. 어느 쪽이 문재인정부의 진짜 얼굴인지, 국민은 묻고 있다.

임성수 정치부 차장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