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개신교도들이 성서를 대하는 방식이 이슬람교도가 쿠란을 대하는 방식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이슬람교는 쿠란이 교주 마호메트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받은 알라의 계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그 의미뿐 아니라 글자 하나까지도 정확하게 알라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종교 경전의 저자가 신으로부터 어떻게 영감을 받는지에 관한 많은 이론 중 쿠란의 경우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기계적 영감설’이다.
기계적 영감설에 의하면 경전의 저자는 타자기와 같은 역할만 한다. 즉, 저자는 신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받은 그대로 기록(혹은 구술)한다. 경전의 문구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고, 경전이 말하는 것은 모두가 신의 뜻이므로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 문자적 의미를 강조하다보니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매우 좁아지고, 종교의 성격 자체가 획일적이고 권위주의적이 된다. 물론 이런 분석은 지면의 한계상 이슬람교의 최근 역사와 문화적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설명이라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기독교에서도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다고 믿고 있지만, 그 영감의 방식에 대해서는 쿠란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우선 성경은 쿠란과 같이 어떤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수십 명의 저자가 수백 년의 기간을 통해 기록한 것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성경 각 저자의 개성을 성경 본문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복음서만 보더라도 각 저자의 성장 배경과 관심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기술된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의 저자는 무아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료를 수집하고 퇴고를 거듭하고 독자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글을 쓴 것이다. 영감에 대한 이런 설명을 신학자들은 ‘유기적 영감설’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하나님은 성경 저자의 삶 전체를, 그리고 그 당시의 문화와 역사까지도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이 성경에 기록되게 섭리하셨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경의 여러 책들이 정경으로 확정(개신교의 경우는 신구약 66권)되는 과정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믿음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렇게 볼 때 기독교에서는 성경 본문 문자에 대한 믿음을 넘어서서 성서 형성의 과정,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포괄적인 믿음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은 문자라는 인간의 언어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고 해석을 통해 시대와 상황에 맞게 생명과 능력을 갖고 독자의 삶에 다가온다. 특별히 이와 같이 성경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리게 된 계기는 종교개혁이라 할 수 있고, 그 결과 오늘날 수많은 개신교 교파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독교적 영감설은 통일성과 권위적 질서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남이 먹는 보약이 효과가 있어 보여도 내 체질에 맞지 않으면 독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개신교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일부 신자들이 기계적 영감설에 입각해 성경의 어떤 구절을 단순히 인용하면서 이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초대 기독교가 복음서 간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복음서만을 정경으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성경 본문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으며 다양한 해석 사이의 대화를 통해 최선의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개신교가 이제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