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디자인의 시각으로 들여다본 고대 유물

입력 2020-09-10 20:36

“잘 보긴 했는데, 모두 만들다 만 것 같아.”

디자인을 전공한 저자가 외국인 친구와 함께 박물관을 다녀온 후 들은 이 말은 저자가 국내 유물을 새로 보게 하는 이유가 됐다. 소박하다고만 생각했던 유물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면서 저자는 디자인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이를 통해 현대 디자인이나 현대 미술과 비교해 그에 깃들어 있는 가치를 새로 끄집어낸다.

먼저 삼한시대 오리 모양 토기에 대한 설명을 보자. 저자는 해당 토기가 오리의 특징만 강화하고, 필요 없는 군더더기를 없앤 것에 주목한다. 특히 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날개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생략과 단순화를 브랑쿠시 같은 현대 조각가의 작품과 비교한다. 또 단순화를 현대 미술의 추상성과도 연결시킨다. 단순하게 추상화된 몸통 곡면의 아름다움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의 건축물과 다르지 않은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가야의 말머리 장식 뿔잔을 통해선 20세기 콜라주 기법을 떠올린다. 뿔잔은 심플한 윗부분과 달리 아랫부분은 복잡한 말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렇게 상반되는 형태가 부딪치는 것에서 어울리지 않는 형태를 대비한 20세기 초 입체파와 비교한다. 술잔이라는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그 자체로 조각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것을 두고선 스페인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의 테이블에 빗댄다. 중동과 유럽에서 발견된 비슷한 모양의 뿔잔과 비교·대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저자는 “다른 지역의 뿔잔들에 비해 현대적인 조형성이나 추상성에 더 가까이 있다”며 “그런 점에서 가야의 말머리 모양 뿔잔은 과거보다는 현대에 더 가까운 유물”이라고 말한다. 기능에 주목해 디자인을 설명하기도 한다. 고구려의 다양한 화살촉을 두고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말을 빌려온다. 부채처럼 넓어 그 기능이 의심되는 화살촉을 두고 ‘양력’ 즉 뜨는 힘을 고려한 설계라고 분석한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유물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유물의 다른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 역시 수긍이 간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고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만을 다룬 것으로 향후 모두 5권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