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찬 만두소… 비비고, 냉동만두의 편견을 깨다

입력 2020-09-10 20:17
비비고 왕교자 제조공정.

만두공장에서 만두가 빚어지는 과정을 담은 유튜브 영상이 있다. 커다란 기계가 만두 재료들을 썰고 다지고 섞고 뭉쳐서 만두피에 담아 모양까지 집어내는 일련의 공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규칙적이고 평화로운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위로를 받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CJ제일제당 ‘비비고 왕교자’ 공장의 이 단조로운 풍경은 무려 34만뷰를 찍으며 관심을 모았다.

절도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 각 잡힌 기계공정을 만들어내기까지 여러 사람의 갖은 노력이 필요했다. ‘비비고 왕교자’ 탄생 비화를 살펴봐도 그렇다. 비비고 왕교자가 등장한 2013년 12월 이전까지 냉동만두는 품질 못잖게 가성비에 충실한 가공식품이었다. 그 무렵만 해도 냉동만두 만두소는 고기와 채소를 갈아서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만두소로는 만두의 식감을 충분히 살리기 어려웠다. 냉동식품일지라도 기본기에 충실한 만두를 만들기 위해 CJ제일제당 ‘만두연구팀’이 뛰어들었다. 20년 넘게 만두 연구개발을 해 온 수석연구원을 중심으로 9명의 연구원이 ‘담백하면서도 물리지 않는 만두 만들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연구팀은 일단 발품을 팔았다. 전국의 만두 맛집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만두를 섭렵했다. 맛있는 만두를 먹어보는 것으로 그만이면 좋겠지만, 연구원들은 맛의 디테일을 찾아내야 했다. 한 입 먹고 물로 헹구고 다시 맛보고 물로 헹궈내는 작업은 식도락과는 거리가 먼일이다. 맛의 차이를 발견하고 기억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채 물리도록 만두를 먹어야 했다.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유럽 등에서 판매되는 비비고 냉동만두 제품들. CJ제일제당 제공

그렇게 습득한 맛의 차이는 CJ제일제당의 만두로 구현돼야 했다. 지금은 매끈한 기계공정으로 만들어지지만 연구의 과정은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최선의 맛’을 찾아내기 위해 하루에 300개 이상의 만두를 손으로 직접 빚어가며 테스트를 이어갔다. ‘느끼하면 안 된다’ ‘돼지고기 냄새가 나면 안 된다’ 등 까다로운 내부 맛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6개월 이상 이 과정을 지나온 연구팀은 이 시기를 ‘온몸에서 돼지고기와 채소 냄새가 진동하던 시간’으로 떠올린다고 한다.

오랜 연구 끝에 도달한 중요한 지점은 ‘칼로 써는 공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돼지고기와 채소 등 원물의 식감과 육즙을 살려서 씹었을 때 입안에 가득 차는 풍부한 식감을 구현하려면 고기와 채소를 갈아서 만두소를 만들던 관행을 버려야 했다. 만두소의 식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크기도 키웠다. 기존 교자만두는 13g 정도였는데 35g의 크고 묵직한 왕교자를 만들어냈다. 교자만두 위주의 냉동만두 시장에 ‘왕교자’가 등장하게 된 것은 이런 까닭에서였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록펠러 센터의 ‘비비고 팝업스토어’에서 방문객들이 비비고 제품을 맛보고 있다. CJ제일제당 제공

만두의 모양에도 변화를 줬다. 납작한 일본식 교자만두 대신 삼면의 각이 살아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미만두’ 형태를 따랐다. ‘미’는 해삼의 옛말로, 해삼 모양처럼 만든 만두를 미만두라고 한다. 만두피에 물결 모양의 주름을 잡아서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하던 미만두의 고급스러움을 재현했다. 만두피의 쫄깃하고 촉촉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3000번 이상 반죽을 치대고 진공반죽 공정도 도입했다.


오랜 노력 끝에 냉동만두 시장에 등장한 비비고 왕교자는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을 올리는 메가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비비고가 냉동만두 시장을 이끌면서 가성비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치열한 상황이 펼쳐졌다. 품질 경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냉동만두 시장 전체가 업그레이드됐다.

우리나라 냉동만두 시장이 5000억원 규모로 성장하고, 냉동만두가 어지간한 분식집 만두의 맛을 뛰어넘을 만큼 냉동만두 시장의 질적 향상이 이뤄진 데에는 비비고 왕교자가 기여한 바가 크다. 경쟁업체들도 비비고 왕교자의 등장이 냉동만두 시장 판도를 바꿨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정도다.

중국 소비자들이 중국 징동닷컴에서 지난 6월 진행한 ‘비비고데이’ 브랜드 행사에 참가해 비비고 제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CJ제일제당 제공

비비고 냉동만두는 글로벌 시장 공략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비비고 만두로 CJ제일제당이 글로벌 시장에서 거둔 매출은 868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국내 매출은 3160억원(36.4%), 해외 매출은 5520억원(63.6%)으로 해외에서 더 많이 팔렸다. 해외 매출 비중은 2018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고 지난해 60%를 돌파했다.

미국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한 게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다. 비비고 만두는 2016년부터 미국 냉동만두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오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비비고 매출은 3630억원으로 전년(2100억원) 대비 1.5배 증가했다. 우리나라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많은 매출을 기록하면서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탄탄히 하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 베트남, 유럽, 일본 등에서도 꾸준히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비비고 만두는 ‘얇은 피에 갈지 않고 큼직하게 썰어 넣은 꽉 찬 만두소’라는 비비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지화와 차별화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며 “비비고 브랜드를 통해 한국 식문화의 세계화를 이끄는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