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테니스 ‘빅3’가 자리를 비운 US오픈 테니스대회가 20대 ‘차세대 스타’들의 대격돌로 흥미를 자아낸다. 누가 이겨도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란 족적을 남기고 동년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기회라 코트 위 경쟁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 랭킹 27위 파블로 카레노 부스타(스페인)는 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진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대회 9일째 남자 단식 8강전에서 데니스 샤포발로프를 3대 2로 잡았다. 직전 열린 또 다른 8강 경기에선 알렉산더 츠베레프(7위·독일)가 보르나 초리치를 3대 1로 눌렀다.
준결승에 선착한 두 선수가 관심을 끄는 건 모두 20대 선수라는 점이다. 라파엘 나달(2위)의 뒤를 잇는 스페인의 차세대 스타로 꼽히는 카레노 부스타는 29세, 독일의 신성 츠베레프는 23세에 불과하다. 10일 열릴 남은 8강 대진에도 30대 선수는 없다. 도미니크 팀(27·3위·오스트리아)-알렉스 드 미노(21·28위·호주), 다닐 메드베데프(24·5위)-안드레이 루블레프(23·14위·이상 러시아) 모두 20대 선수들이다.
8강에 30대 선수가 한 명도 없는 ‘낯선’ 상황이 펼쳐진 건 남자 테니스를 주름잡아온 ‘빅3’에게 불의의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로저 페더러(4위·스위스)가 무릎 부상 이후 수술을 받으며 일찌감치 올 시즌을 마감했고,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US오픈 출전을 포기했다. 그리고 노박 조코비치(1위·세르비아)는 16강전에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공을 쳤다가 실격당해 대회를 마감했다.
지난 수 년 간 남자 테니스는 ‘빅3’ 천하였다. 2016년 US오픈에서 스탄 바브링카(15위·스위스)가 우승한 뒤 2017년부터 올해 호주오픈까지 13개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는 빅3가 나눠 가졌다. 30대 나이를 무색케 한 이들의 활약 탓에 20대 ‘차세대 주자’들은 한 차례도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빅3가 한 명도 없는 메이저대회 8강전은 16년 만일 정도다.
이번 대회는 20대 선수들의 혈투로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날 카레노 부스타는 샤포발로프의 강서브(에이스 26-5)에 고전했고, 후반엔 엉덩이 부상으로 치료받기도 했다. 하지만 리턴샷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시도한 끝에 4시간9분의 체력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츠베레프도 시속 223㎞의 강서브로 초리치를 몰아붙여 테니스 팬들을 홀렸다.
루블레프-메드베데프전은 러시아 선수 간 맞대결로 주목된다. 다만 메이저대회 결승 진출 경험이 없는 루블레프보단 지난해 이 대회 준우승을 차지해 ‘차세대’의 대표선수로 지목됐던 메드베데프의 승리가 점쳐진다. 호주오픈(2020) 프랑스오픈(2018-2019) 준우승 경력이 있는 팀은 US오픈 8강(2020)이 최고 성적인 호주 유망주 드 미노를 누를 가능성이 크다.
4강 첫 대진을 완성한 카레노 부스타-츠베레프전은 지난해 호주오픈에서 ‘기행’을 벌인 두 선수의 맞대결로도 주목된다. 카레노 부스타는 16강 니시코리 케이전(패)에서 오심에 항의하며 가방을 코트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츠베레프도 밀로스 라오니치와의 16강 경기에서 패한 뒤 라켓을 8번이나 바닥에 내려쳐 때려 부순 바 있다.
한편 외국 스포츠 베팅업체들은 메드베데프-팀-츠베레프 순으로 우승을 점치고 있다. 하지만 5세트가 치러지는 메이저대회의 특성 상 젊은 선수들 중 경기 변수에 누가 더 잘 대응하는지에 따라 실제 결과는 뒤바뀔 수 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