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권수립 72주년 기념일(9·9절)에 경제정책 전반이 실패했다고 이례적으로 시인했다. 최고지도자가 국가적 명절에 국정운영 실패를 자인하면서 체면을 구긴 셈이다. 김 위원장이 역점을 두고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까지 공사를 끝낼 것을 지시한 평양종합병원의 완공도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6차 확대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노동신문이 9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예상치 않게 들이닥친 태풍 피해로 부득이 우리는 국가적으로 추진시키던 연말 투쟁 과업들을 전면적으로 고려하고 투쟁 방향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정책 전반이 실패했음을 인정한 데 이어 또 한번 실책을 자인한 것이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제9호 태풍 ‘마이삭’이 함경남도를 강타하면서 검덕지구에서만 주택 2000여채가 무너지고 다리 59개가 끊어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검덕지구는 아연·마그네사이트가 대량 매장된 세계 최대 규모의 광물 매장지다.
김 위원장은 “검덕지구 복구 건설을 또다시 인민군대에 위임하기로 했다”며 노동당 창건일까지 피해 복구 작업을 마칠 것을 당부했다. 지난 5일 평양 노동당원 1만2000명을 함경도 피해 복구 현장에 동원키로 한 데 이어 군까지 투입한 것이다. 다음달 10일 공표할 최대 성과로 수해 극복을 내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가용 자원과 인력을 수해 복구에 집중키로 하면서 김 위원장의 최대 역점 사업인 평양종합병원과 원산·갈마 해안관광지의 연내 완공도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노동당 창건일 전 원산·갈마 해안관광지의 완공은 포기한 것 같다”며 “평양종합병원 완공 여부 역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대규모 열병식과 군중집회를 생략한 채 9·9절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9절을 기념해 축전을 보낸 사실을 전했을 뿐 9·9절 관련 행사는 보도하지 않았다. 올해가 정주년(5년 단위로 꺾이는 해)이 아닌데다 ‘삼중고’(대북제재·코로나19·수해)로 행사를 진행할 여력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9·9절 전후 핵실험 등 굵직한 무력 도발을 감행한 전례가 있는 만큼 군 당국은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