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비대면) 시대다. 음식배달부터 부동산 거래까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온라인플랫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에 맞춰 10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플랫폼 불공정거래행위를 막기 위한 특별법을 이달 중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법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 추진 배경과 진행 과정을 들여다보면 졸속·부실행정 투성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공룡’ 네이버만 이 법망을 피할 수 있다는 기대에 차 있다. 조 위원장의 성과 조급증이 오히려 플랫폼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3개월 만에 뚝딱, 특별하지 않은 특별법
문재인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1월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선숙 의원이 당시 김상조 위원장에게 플랫폼 시장 규제를 담은 의원입법안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김 위원장은 당장 특별법을 만들기보다는 연구용역을 통해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는 올해 초까지 이어져 공정위는 지난 2월 공정거래법 하위 규정인 플랫폼 시장규제에 관한 지침을 만들기 위한 외부전문가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올 6월 공정위는 갑자기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칭·이하 플랫폼법)’의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특별법은 말 그대로 해당 분야 불공정행위가 만연해 사회문제화가 되고 공정거래법만으로는 규제가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 만들어져야 한다. 대기업의 고질적인 하청업체 쥐어짜기로 하도급법이 만들어졌고, 가맹점주와 대리점주의 잇따른 자살로 가맹거래법과 대리점업법이라는 특별법이 제정된 게 대표적 예다. 연구용역 등 1~2년의 입법 준비 기간도 필요하다. 그런데 플랫폼법은 연구용역도 없이 단 3개월 만에 만들어지게 된다.
네이버는 규제 제외? 무늬만 플랫폼법
‘속성’ 법 제정 과정에서 플랫폼법은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공정위는 플랫폼법의 규제 범위를 중개거래에 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개거래란 G마켓 사이트나 배달의민족 앱에서 소비자가 플랫폼을 통해 물품을 구입하거나 주문하는 서비스 등을 말한다. 이런 중개거래에서 ‘갑’인 플랫폼업체가 ‘을’인 입점업체에 대한 ‘갑질’을 막기 위해 양자 간 서면계약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것이 플랫폼법의 주요 골자다.
이렇게 좁은 시각으로 볼 경우 한국 플랫폼시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무늬만 특별법’이 될 수밖에 없다. 국내 플랫폼 시장은 네이버라는 포털이 오픈마켓부터 부동산, 금융까지 모든 분야에 있어 ‘플랫폼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11번가나 위메프 등 오픈마켓 사이트에 한 번에 들어가 옷을 사는 소비자보다 네이버 검색을 1차로 거친 뒤 해당 오픈마켓 사이트에 들어가 옷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더 많다.
하지만 공정위는 네이버의 이런 검색서비스는 플랫폼법 규제대상인 중개거래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네이버가 단순히 정보만 제공할 뿐이지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오픈마켓 업체들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입장이다. 한 오픈마켓 관계자는 “네이버 검색을 타고 들어온 소비자가 물건을 사면 네이버는 수수료 명목으로 2%를 떼어가는 구조”라면서 “플랫폼 시장의 ‘갑 오브 더 갑’인 네이버를 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오픈마켓들은 네이버에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노출하기 위해 연간 1조원이 넘는 금액을 상품가격 할인에 쓰는 출혈경쟁을 벌이는 반면, 네이버는 검색서비스 수수료 명목으로 가만히 앉아서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대다수 분야의 플랫폼들이 네이버를 통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하는 현실을 플랫폼법이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네이버는 한술 더 떠 오픈마켓 성격인 네이버 쇼핑도 플랫폼법 규제 대상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플랫폼법은 입점업체에 대한 갑질을 막자는 취지인데 네이버 쇼핑은 입점업체에 어떠한 요구조건도 내걸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공정위와 대조적으로 지난 7월부터 ‘온라인 플랫폼 공정성·투명성 규정’을 만들어 시행 중인 유럽연합(EU)은 중개거래 외에 구글 등 검색서비스도 규제대상으로 삼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만으로 충분한데 왜?
공정위 내부에서도 급하게 만들어지는 플랫폼법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우세하다. 현행 공정거래법이나 자율규약 성격인 가이드라인 등으로 먼저 규제를 시행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공정위는 현재 조사 중인 구글의 게임업체에 대한 갑질 의혹 사건도 현행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남용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구글은 앱 플랫폼인 플레이스토어에 게임업체를 무료로 입점시킨 뒤 소비자가 내려받은 게임에서 아이템을 사면 이 가운데 일정액을 자신들이 수수료로 챙기고 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플랫폼법의 졸속·부실입법 추진 배경에는 조 위원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전임 김 위원장은 40년 만의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과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이뤄낸 뒤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영전했다. 이에 비해 조 위원장은 ‘비전문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취임한 뒤 1년이 지났지만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다. 초라한 성과를 플랫폼법 제정으로 한순간에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이달 중 입법예고는 조 위원장의 의중이 90% 이상 반영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