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에 다니는 A에게 최우선은 일이다. 성실했고 영민했다. 욕심은 성과로 이어졌다. 대단하진 않지만 중간은 가는 투자도 따왔다. 어깨에는 자부심이 쌓였고, 미소에는 자신감이 솟았다. 2년 뒤 A는 놀랍도록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눈동자는 눈치를 보느라 바쁘게 움직였고 걸음걸이는 풀이 죽어 있었다. A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오늘만 버티자”라고 했다. A는 왜 무능한 골칫덩이로 전락한 걸까.
오래전 이런 연구가 있었다. ‘부하를 무능하게 만드는 방법은 뭘까?’ 발상부터 흥미롭다. 가설은 간단했다. 유능한 직원이라도 상사의 핀잔이 지속되면 무능해지지 않을까. 결론 도출까지 15년이 걸렸다. 프랑스의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장 프랑수아 만초니와 장 루이 바르수는 약 3000명을 만나고 나서야 상사가 노력(개입·통제)할수록 결과는 악화하는 ‘잔인한 사이클’을 증명했다. 만초니는 한 인터뷰에서 “상사가 업무에 간섭할수록 부하는 더욱 무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이걸 ‘필패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상사는 고개를 내젓겠지만 부하는 무릎을 ‘탁’ 칠 만한 이론의 진행 과정은 이렇다. 우연히 부하의 작은 실수를 잡아낸 상사가 능력을 의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때 실수란 업무 능력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더 사소하다. 문자 답장을 늦게 하거나 전화 응대를 소홀히 하는 행동일 수 있다. 상사의 낙인은 관리·감독으로 뻗어 나간다. 눈치 없는 부하라도 자신이 감시 대상이라는 사실은 안다. 곧 의욕을 잃게 되는데, 이때부터 상사가 불편해진다.
상사는 보고를 요구하면서 직접적 개입을 시작한다. “확실해?” “아니지 않아?” 묻고 또 물으며, “빨리하라고 했잖아” “무조건 해” 거듭 압박한다. ‘날 신뢰하지 않는구나.’ 부하는 낙담한다. 이때부터 반항이 시작된다. 상사는 확신한다. ‘내가 사람을 잘 봤어, 일도 못하는데 인성까지 안 좋네.’ 부하는 주체성을 잃는다. 하달 명령만 처리하는 방식으로 최악의 생존전략을 택하게 된다.
유능했던 인재가 무능해지는 상황은 개인적 영역으로 치부됐다. 외부 상황 변화에 따른 집중력 저하 혹은 신체 악화로 해석됐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다. ‘무한상사’의 정준하 과장이 만년 과장 딱지를 뗄 수 없었던 이유는 감나무에서 추락해 머리를 다쳤다는 설정 때문이다. 그는 늘 골칫거리였다. 시키는 일은 겨우 해냈고 그마저도 늦었다. “감나무만 아니었어도….” 유재석 부장은 통탄한다. 하지만 필패 증후군은 유 부장의 계속된 구박이 정 과장을 더욱 쳇바퀴 돌게 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머리를 다쳤다고 해도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정 과장은 자신을 내리찍는 낙인 탓에 정체를 택했을 수 있다.
이론의 배경은 확증 편향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지적 편견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상사의 뇌구조에는 두 집단이 있다. 잘 통하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 전자는 ‘일을 잘한다’로, 후자는 ‘무능하다’로 산출된다. 무의식은 단단해서 설령 후자에 속한 직원이 성과를 낸다고 해도 ‘얻어걸렸다’고 받아들인다. 이미 무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에 반하는 근거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인지 간 불일치가 거슬릴 때 인간은 불일치를 제거하는 방향을 택하는데, 상사의 이런 비겁함은 개인을 무능하게 만들 뿐 아니라 조직 전체를 주저앉게 만든다.
이런 연구는 어떤가. 1968년 로버트 로젠탈 하버드대 교수가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지능 검사를 실시했고, 이 중 상위 20% 명단을 교사에게 건넸다. 얼마 후 시험에서 명단 속 학생 모두의 성적이 올랐다. 원래 우수한 학생이었으니 특별할 것 없는 결과였을까. 사실 로젠탈은 무작위로 명단을 만들었다. 성적 향상은 교사의 기대와 부응하려는 학생들의 노력이 마주해 얻어낸 수확이었다.
‘피그말리온 효과’다. 상사의 독려는 부하에게 영향을 미치고, 성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부하의 성장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으로 잔인한 사이클을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필패 증후군을 접한 상사 대부분은 실천하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방법을 요구했다. 필패 증후군 개념을 인정할 것. 그리고 언어를 순화해 “나는 널 돕고 싶다”고 말할 것. 본질은 믿어주고 들어주고 인정하기인데, 이 방법도 비겁하긴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