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젠가 이런 사달이 날 줄 알았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자기들이 뭔데 다른 사람들 신상정보를 막 올리고 그런담.
디지털교도소 얘기다.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정체불명의 민간 사이트다. 사이트는 성범죄나 아동학대, 살인 등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이름과 사진, 나이, 전화번호 등을 공개한다. ‘n번방’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 3월 개설됐는데 성범죄자와 이름이 같은 엉뚱한 사람이 사이트에 ‘수감’(신상정보 게시, 박제라고도 함)되는 등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지난 3일에는 사이트에 박제된 명문대생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디지털교도소는 애초 A씨를 ‘지인 능욕범’으로 지목했다. 같은 과 여학생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 달라고 의뢰했다는 피해자의 제보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A씨는 처벌조차 받지 않았는데 디지털교도소는 그를 범죄자로 단정했다. 그리고 이름과 사진, 전화번호, 학과, 학번까지 닥치는 대로 사이트에 올렸다. A씨는 휴대전화 해킹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결백을 호소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는 디지털교도소의 전횡을 제때 막지 못했다. 사이트 서버가 해외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A씨는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상식을 벗어난 온라인의 저주가 사회적 명예살인을 넘어 실제 죽음까지 부른 것이다. 사이트의 야만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숨진 A씨의 신상정보를 삭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A씨가 사과하는 내용이라며 목소리 파일을 추가 공개했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교도소를 옹호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애초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분노와 이로 인한 사법 불신이 사이트 개설에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사이트 소개글에는 “저희는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고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우리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도는 세계적으로도 밑바닥 수준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2018년도 인간개발지수(HDI)를 들여다보면 실태가 잘 드러난다. 한국은 기대수명과 교육 수준, 1인당 실질국민소득 등을 근거로 한 전체 랭킹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을 제치고 2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도’ 항목에서는 ‘신뢰한다’는 대답이 26%에 불과하다. 인간개발지수 1위 노르웨이의 88%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다. 미국(61%) 영국(68%) 독일(68%) 스웨덴(69%) 일본(67%) 등에도 크게 뒤진다. 전체 순위로 따지면 사법 신뢰도 조사에 참여한 145개국 중 133위에 불과하다.
사법 불신의 대표 사례인 조두순을 떠올려보자. 1983년 길 가던 19살 여성을 마구 때리고 여관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31살 조두순에게 법원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95년 술자리에서 60대 남성을 폭행해 숨지게 한 43살 조두순에게 법원은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2008년 56살 조두순은 경기도 안산에서 8살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납치해 잔혹하게 성폭행했음에도 이듬해 고령이고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된다며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31살 조두순에게 혹은 43살 조두순에게 더욱 강한 처벌이 내려졌더라면….
최근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우리 사법부를 비판하는 대형광고가 실렸다. 광고에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가 한국 법정에서 고작 18개월형을 선고받았다. 피해자들이 정의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메시지가 실렸다. ‘기생충’의 K무비에서 시작돼 ‘드라이브스루’의 K방역을 거쳐 ‘다이너마이트’의 K팝으로 이어지며 차오르던 ‘국뽕’의 기쁨이 한순간에 펑하고 날아가버린 것만 같아 씁쓸하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