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장은 ‘이사야의 소명 장’이라는 별명이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이사야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탄식을 들은 이사야는 자원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겠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이사야 6장 1~8절을 통해 ‘참된 예배’가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참된 예배는 세상을 향하던 눈을 하나님께로 옮기게 하고,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 앞에 엎드리게 합니다. 참된 예배는 주님의 구원에 감격하게 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내 삶을 내어드리게 합니다.
이사야는 참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을 결단했습니다. 이사야의 소명 장은 본문 8절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감동적인 고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 후반부 말씀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이사야가 어떻게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지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경험하게 될 고통의 현실을 정확하게 예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사야가 전하는 말씀에 백성들이 반응하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 6: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는 이전보다 복음을 전하는 게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성도가 순종으로 걷는 십자가의 길이 단 한 번이라도 쉬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어려움에 기한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는 고통스러운 사명의 길에 대해 듣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주여 어느 때까지이니까.”(사 6:11) 주님은 본문 12절에서 ‘남유다가 철저하게 무너지고 황폐하게 되는 때까지’라고 답하십니다.
우리는 전 세계적 역병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웃음을 당합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따가운 시선 앞에 서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사야처럼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우리가 충분히 맞고 회개하고 돌이킬 때까지라고 말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고통의 시간을 견딜 능력을 이미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가 이 길을 완주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명을 붙들고 이 땅을 사는 성도 안에,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심어 놓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 ‘거룩한 씨’에서 ‘씨’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 ‘제라’는 씨 자손 종자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원 복음’이라 불리는 창세기 3장 15절에 있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는 ‘여자의 후손’에서 후손과 같은 단어입니다. ‘거룩한 씨’는 우리 가운데 오실 구원자 예수님입니다.
코로나19 시기가 길어지면서 다들 고통을 호소합니다. 교회와 성도들도 함께 고통받고 신음합니다. 깊어져 가는 어둠의 시간에 우리는 어디에서 힘을 얻어야 할까요. 거룩한 씨가 되셔서 그루터기 같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소망은 그루터기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거룩한 씨에 있기 때문입니다.
조영민 목사(서울 나눔교회)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나눔교회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주변에 전하고 나누는 일을 위해 존재하는 정겨운 동네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