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SNS 정치’, 잘하면 국민소통 못하면 사회갈등

입력 2020-09-12 04:01

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잭 도시 트위터 CEO를 만났을 때다. 문 대통령은 “국정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국민과 소통하는 게 가장 중요한 리더십”이라고 했다. 소통의 수단으로는 SNS를 들었다.

실제로 올해 68세인 문 대통령은 젊은층 못지않게 SNS에 능통하다고 한다. 한 전직 청와대 참모는 “SNS에서 화제가 되는 사안을 보고했는데, 대통령이 이미 알고 계셨다”고 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날것의 여론을 볼 수 있는 SNS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SNS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에 속한다. 문 대통령의 페이스북 팔로어는 81만명이 넘는다. 트위터 팔로어는 180만명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난 8일까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총 627건의 글을 남겼다. 한 달 평균 15개씩 적은 것이다. 트윗도 3500여건을 썼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트윗 수(508건)에 비해 7배나 많은 수치다.

페이스북에 담긴 대통령의 진심?

국민일보가 문 대통령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627개 글을 전수조사한 결과 90% 이상이 청와대 공식 회의 인사말이나 행사 축사, 기념사 등이었다. 문 대통령은 매년 4월 16일이 되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고 적었고, 5월 1일 노동자의 날엔 “노동의 가치를 되새기겠다”고 남겼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이나 5·18 민주화운동, 제주 4·3 사건 기념일마다 잊지 않고 소회를 밝혔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SNS에 딱딱하고 무거운 글만 적은 건 아니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은 취임 후 네 차례에 걸쳐 애독서를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명견만리’라는 책을 소개하며 “세상의 변화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뒤늦게 글을 익힌 할머니들이 쓴 ‘요리는 감이여’라는 책도 홍보했다. 대통령이 페이스북으로 일독을 권한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문 대통령은 반려동물인 토리와 찡찡이, 마루의 근황뿐 아니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선물로 준 풍산개 ‘곰이’가 새끼를 낳은 소식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따금 민감하고 어려운 현안 고민도 털어놨다.

2017년 8월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여당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했다. 당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SNS에 “청와대 밥이 부실했다”고 남기자 여권 지지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 페북에 “여유를 좀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고, 논란이 수습됐다.


2018년 4월 김기식 당시 금융감독원장 후보자에 대한 외유성 해외출장 의혹이 일었다. 문 대통령은 SNS에 “인사가 과감할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고 속내를 밝혔다. 다음 달 개헌이 무산되자 “진심 없는 정치에 실망하셨을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국회를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이 낙마하자 “조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을 기대했지만 꿈같은 희망이 되었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

올해 들어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관련한 글을 주로 써왔다. 올해 올린 페이스북 글 171개 가운데 무려 107개가 코로나19 관련 게시물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26일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코로나19를 언급하며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정부의 대응 상황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대통령과 참모들이 함께 쓰는 SNS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SNS에 “파업 의사들 짐까지 떠맡은 간호사들의 헌신에 감사하다”고 썼다. 이 글을 두고 편가르기라는 비판이 뜨거워지자 정치권에서는 필자 논란까지 불붙었다.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게 맞느냐는 의문이 나왔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 기획비서관실이 쓴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모든 SNS 글을 직접 적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해외순방을 떠날 때마다 소회를 남기는데, 이 경우 연설비서관실 등에서 초안을 잡고 대통령은 마지막에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바쁜 일정 탓이다. 참모들이 문 대통령에게 SNS 글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태풍과 지진을 비롯해 큰 사고가 나면 종종 이런 ‘선 제안, 후 작성’이 이뤄진다고 한다.

반면 대통령이 먼저 참모들에게 ‘이런 것은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꺼내는 사례도 있다. 지난달 24일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국면에서 한국 교회를 향해 ‘책임감을 갖자’고 지적한 부산 샘터교회 안중덕 목사의 SNS 글을 공유했다. 대통령이 직접 해당 글을 보고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직접 쓰든, 참모들이 초안을 작성하든 대통령의 최종 확인 없이 SNS에 올라가는 글은 없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로서 국민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를 참모들과 함께 고민한 결과물이 대통령의 SNS라는 것이다.

소통도 좋지만…논란 최소화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오후 페이스북에 “의사들이 떠난 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간호사분들을 위로한다”고 남겼다가 의료진을 갈라치기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코로나19와 관련해 “국내 지역감염자 수가 4명으로 줄었다. 우리는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다”고 페북에 남겼다가 직후에 확진자가 폭증해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일각에선 권위를 내려놓고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는 대통령의 모습은 바람직하지만 SNS의 영향력을 고려해 글을 올릴 때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대통령이 모든 글을 일일이 다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SNS는 수많은 억측과 반발과 오해를 살 수 있다”며 “특히 사회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거나 여론이 분분한 사안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한 뒤 SNS를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