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은 빠르게 성장했다. 인구도 꾸준히 늘었다. 그런데 2000년에 들어서면서 동네가 어수선해졌다. 러브호텔이 아파트 단지와 가까운 곳에 무분별하게 생겨난 게 이유였다. 요란한 외장 때문에 아이들이 “새로 생긴 놀이동산에 데려가 달라”고 부모에게 조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어린아이들 눈에 러브호텔이 놀이동산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고양시 러브호텔 난립 저지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여기에는 대화·마두·백석·탄현동 지역 주민과 고양청년회, 여성민우회 등 시민 단체가 참여했다. 나는 기독교 대표였다. 허가를 내준 최종 결재권자인 고양시장과 면담을 추진했다. 시장은 공대위 임원을 만난 자리에서 무조건 발뺌했다.
“나는 법대로 허가를 내줬을 뿐입니다. 조금의 특혜도 없었습니다.”
공대위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주거지 가운데 러브호텔 같은 시설을 허가해 준 것 자체를 특혜로 봤다.
“시장님이 합법적으로 허가를 내줬다고 하시니 저희도 합법적으로 퇴진운동을 하겠습니다.”
고양시민 5만여명에게 시장 퇴진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았다. 이 가운데 교인이 1만7000여명이었다. 교인 서명은 내가 주도해 받았다. 합법을 내세웠던 고양시장은 결국 낙선했다. 시민의 힘이었다. 이듬해에는 ‘백석동 나이트클럽 건축허가’가 취소됐다. 시민들의 요구가 일부 관철된 것이었다.
당시 나는 고양시 환경운동연합 대표를 맡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고양 시민운동의 좌장 역할을 맡게 됐다. 2002년 고양시장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후보 단일화를 위한 경선이 진행됐다.
새천년민주당 측에서 내게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수락했다. 그런데 경선 개표가 그해 3월 31일이었다. 그날은 부활절이었다. 뭔가 마음이 불안했다. 오전에 부활절 예배 설교를 한 뒤 개표장에 도착했다. 내심 잠시 지켜본 뒤 교회에서 오후에 진행되는 부활절 칸타타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슬쩍 자리를 뜨자 여러 후보자 캠프 관계자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위원장님 떠나시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자리를 지켜주세요.” 당황스러웠다. ‘부활주일에 담임목사가 시장 후보 뽑는 선거 개표를 지키고 있다니…’ 좌불안석이었다.
교회에서는 계속 연락이 왔다. “목사님 이제 세 곡 남았습니다.” “마지막 곡 시작했습니다.” 개표는 길어졌다. 결국 수석부목사에게 연락했다. “칸타타가 끝나면 나 대신 축도를 부탁하네.”
개표는 늦은 밤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니 사모가 눈에 불을 켜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목사가 정치한다고 부활절 칸타타에 못 오는 게 말이 됩니까.” 날카로웠다. 잘못했으니 변명할 수도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는 청천벽력같은 말이 나왔다. “이혼합시다. 정치하는 목사와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