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입장에서 특정 이름을 거론하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지난달 31일 오전 총리관저를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는 기시다 후미오(63) 자민당 정조회장을 아베 신조(66) 일본 총리는 냉정한 말로 돌려세웠다.
사흘 전 아베 총리의 갑작스런 사임 발표에 일본 정치권은 일렁였다. 집권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 일본의 특성상 공석이 된 자민당 총재 자리로 관심이 쏠렸다. 자민당 파벌 간 물밑 암투가 본격화됐다. 당초 아베가 후계자로 낙점해둔 인물로 알려졌던 기시다 회장도 그중 하나였다.
약 20분간 이어진 아베와의 만남에서 기시다는 “총재 선거에 나가게 됐다.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베는 거부했다. 기시다가 심란한 표정으로 관저를 떠났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선위를 기대하고 있던 기시다로서는 총리의 변덕에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아베는 왜 기시다를 저버렸나
기시다는 자민당의 유서 깊은 파벌 ‘고치카이’를 이끄는 리더다. 현재 기시다파로 불리는 이 파벌에는 중의원 47명이 속해있다. 자민당 보수본류를 형성하는 고치카이는 기본적으로 화합을 중시하며 중도·온건보수 노선을 추구한다. 아베가 매파라면 이들은 비둘기파다.
7년 8개월 장기집권으로 ‘아베 1강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일본 정치권은 강경보수 일색으로 재편됐다. 고치카이 역시 비둘기파라는 상징성만 남은 채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아베에게 고치카이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했다.
잘 알려져 있듯 아베의 숙원은 평화헌법 개헌이다. 일본의 교전권을 금지하는 헌법 9조를 개정해 일본을 전쟁가능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1년 단기로 끝난 2006년 1차 집권 실패 후 아베는 더 이상 개헌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2012년 재집권 후 아베 정권은 표면적으론 ‘아베노믹스’ 등 국민 실생활과 직결되는 경제정책을 우선 추진하면서 사회를 서서히 우경화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노골적 개헌 추진은 국민 반발만 산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는 장기집권의 밑바탕이 됐다.
확실한 개헌 동력을 마련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 아베의 3연임 종료 시점인 2021년 9월이 가까워졌고 물리적으로 임기 내 개헌은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번졌다. 자민당 당규가 총재 4연임을 금지하고 있어 당규를 바꾸지 않는 이상 임기 연장도 불가능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아베 장기집권기를 거치며 아베와 이념·정책적 지향점은 유사해졌으나 여전히 비둘기파라는 상징성을 지닌 기시다가 후계자로 떠올랐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온건보수의 리더가 개헌의 사명을 이어받아 추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 폭넓은 국민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시다는 자기 비전을 내보이지 않고 아베에 철저히 복종했다. 지난 2015년 “고치카이는 헌법에 애정이 있다. 당분간 헌법 9조 자체를 개정할 생각이 없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는 기시다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됐다. 아베가 이에 격노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기시다는 “시대 변화에 맞춰 더 좋은 걸로 바꿔가자는 생각”이라며 입장을 수정했다. ‘균형감을 갖춘 현실주의자’ ‘신념 없는 기회주의자’ 상반된 평가가 항상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기시다 대망론’은 코로나19 와중 무너졌다. 한국으로 치면 당 정책위의장에 해당하는 요직인 정조회장을 맡고 있어 적절한 코로나 대책을 제시하며 경쟁자들보다 치고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지만 역량 부족만 노출했다.
지난 4월에는 코로나19로 소득이 감소한 가구에 한해 30만엔을 선별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 내각도 이에 맞춰 추경예산을 편성했지만 돌연 정책 내용이 뒤집히면서 체면을 구겼다. 자민당 2인자이자 ‘니카이파’의 리더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모든 국민에게 10만엔을 지급하자’며 제동을 건 탓이다. 총리를 꿈꾸는 한 파벌의 영수로서 다른 파벌과의 입장 조율을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해내는 정치력을 발휘했어야 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코로나19 실책 등으로 아베 정권이 위기를 맞으면서 자민당 내 ‘포스트 아베’ 논의가 확산됐지만, 기시다의 얼굴로는 차기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우려가 함께 번졌다.
스가의 등판, 그는 정말 ‘아베 꼭두각시’로 만족할까
아베만큼의 정치적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인물이 부재한 상황에서 아베 내각의 만년 2인자 스가 요시히데(71) 관방장관에게 갑자기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가는 권력을 세습한 도련님들이 주도하는 일본 정치판에서 보기 드문 흙수저다. 아키타현 딸기 농가 출신으로 고교 졸업 후 상경해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호세이대 야간 법학부를 졸업했고, 지역구 세습 없이 국회의원 비서로 시작해 관방장관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지난해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를 발표하면서 ‘레이와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고 대중적 인기가 오르기도 했다.
표면적 이유는 건강악화였지만 아베 사임에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급락한 내각 지지율도 영향을 미쳤다. 차기 총리는 잃어버린 국정 동력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치러야 한다. 자민당에 대한 국민 신뢰를 재확인하기 위해 조기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안정적으로 아베의 1년 잔여 임기를 대신하면서 총선에선 승리할 수 있는 대중 인지도를 갖춘 인물로 스가가 급부상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본격적 파벌 전쟁은 1년 뒤로 미룬 채 1년짜리 과도기 내각을 이끌 적임자로 무파벌의 스가가 선택됐다는 것이다. 즉 파벌 간 타협의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7개 주요 파벌 중 5개와 무당파 의원들이 전부 스가를 지지하고 있어 이틀 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변이 없는 한 스가의 승리가 유력하다.
아베도 회견 당일 주변에 “다음은 스가에게 맡기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가가 출마 기자회견에서 “아베 정권을 확실히 계승하겠다”고 강조한 만큼 아베가 상왕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스가가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이미 2~3년 전부터 아베 내각이 아닌 스가 내각이라는 얘기가 돌았다”고 지적했다. 스가가 최근 몇년간 배후에서 아베보다도 더 내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아베의 장기집권 자체가 스가 덕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다. 스가 정치의 핵심은 ‘인사권 장악’이다. 그의 주도로 설립된 내각인사국은 고위 공무원 인사를 총리관저가 장악하도록 만들었다. 관료들이 관저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는 ‘손타쿠’ 문화가 정착되면서 아베 정권의 독주가 가능해졌다.
지난해 11월 ‘벚꽃 보는 모임’ 스캔들 때는 내각의 안전을 위해 아베를 버리는 모습도 보였다. 세금이 투입되는 이 행사에 지역구 주민 800명을 부른 게 들통 나면서 당시 아베는 코너에 몰린 상태였다. 스가는 정례브리핑 때 관련 질문이 쏟아지자 “그건 아베 총리 지역구 사무실에 물어보라”고 답했다. 스캔들을 아베 개인의 문제로 한정하며 내각으로 불이 번지는 일을 막은 것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