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을 너무 쉽게 한다. 가령 제기된 의혹에 대해 결백을 주장할 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만일 내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사퇴하겠습니다.” “잘못으로 밝혀지면 전 재산을 내놓겠습니다.” “내가 책임질 일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의원직이나 전 재산, 심지어 목숨까지 걸겠다는 이런 엄청난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얼마나 억울하면 저렇게 말하겠는가이다. 큰 것을 걸수록 억울함과 결백을 더 호소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자연스럽다. 가령 누군가, 잘못이 드러날 경우 하루 용돈 정도를 내놓겠다는 식의 말을 하면 어쩐지 그 사람이 미덥지 않게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 큰 것을 거는 말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 여기에는 아마 도박의 관행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노름판에서 사람들은 이길 확률이 높을 때 큰 것을 건다. 큰 것을 건 사람은 이길 경우 큰 이익을 보지만 질 경우 큰 손해를 본다. 그러니까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것을 거는 사람은 그만큼 믿을 만한 패를 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전 재산과 목숨을 거는 사람의 말은 그만큼 믿을 만한 것으로, 그만큼 결백하거나 억울한 것으로 이해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큰 것, 중요한 것을 걸수록 주장과 호소는 절실한 것이 된다. 목숨을 거는 사람은 목숨을 걸 만큼 절실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이상하다고 할 수 없다.
재산이나 목숨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다. 이 생각이 긍정되려면 무엇을 위해 재산이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느냐는 질문에 답이 있어야 한다. 회심 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다. 더 고귀한 가치를 위해 세상 사람들이 보통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하찮은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은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더 소중한 가치를 위해 재산이나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을 쉽게 하는 것일 수 있다는 가정은 그들이 말과는 달리 재산도 목숨도 내놓지 않는 것을 통해 부정된다. 장담한 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경우는 많지만, 자리나 재산이나 목숨을 실제로 내놓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너무 억울해서도, 무슨 대단한 신념 때문에 재산이나 목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도 아니고, 그저 말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도박판에서는 지면 자기가 건 것을, 그것이 크든 작든, 모두 잃는다. 큰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큰 것을 걸어 말해놓고 그게 거짓으로 밝혀졌는데도 건 것을 내놓지 않는다는 건 그런 점에서 상식적이지 않다. 건 것은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다. 그들이 엄청난 것을 그처럼 쉽게 걸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결백하거나 억울하기 때문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행위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과장하고 편향된 말을 하고 자기 스스로도 믿지 않는 말을 한다. 궤변도 늘어놓는다.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하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한다. 어제 한 말과 다른 말도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한다.
말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 결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말은 행동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표현이다. 세상과의 약속이고, 심지어 기도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는 말을 통해 예수님이 하신 말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말을 쉽게 하지 마라. 지키지 않을 말은 하지 마라. “예 할 때는 예 라는 말만 하고, 아니오 할 때는 아니오 라는 말만 하여라. 이보다 지나친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 5:37) 예수님은 종종 단호하다. 지나친 말은 악에서 나온다.
이승우(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