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르포] 배달 라이더로 9시간, 3만5천원을 벌었다

입력 2020-09-08 00:12
간편 복장의 라이더가 7일 서울 관악구 횡단보도 앞에서 킥보드 손잡이를 쥔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고객 쿠폰 미사용으로 주문 취소된 요청입니다.”

1시간을 기다려 어렵게 잡은 첫 배달 주문부터 허탕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이후 맞이한 첫 주말. 기자는 폭증한 배달 수요에 바쁘게 일하는 배달대행 기사들의 하루를 체험하기 위해 지난 6일 자전거를 이용해 ‘라이더’로 일했다. 라이더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로 고립된 시민들 사이를 모세혈관처럼 이어주고 있었다.

오전 9시쯤 영업을 시작했지만 1시간 동안 1건의 콜도 잡지 못했다. 마트에서 배달 요청이 3, 4개씩 올라왔지만 주문 내용을 확인하는 도중 ‘다른 라이더가 처리 중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눈앞에서 수십개의 콜을 놓치자 초조해졌다. 마트에 도착하고 나서야 왜 계속 콜을 놓칠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았다. 마트 앞에는 10명 남짓한 라이더들이 오토바이에 몸을 실은 채 콜이 올라오는 대로 주문을 받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치열한 ‘손끝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2년 전까지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했다는 한 라이더는 “이전엔 월급을 받고 일했는데 지금은 내가 뛴 만큼 벌 수 있으니 나은 것 같다”며 “하루에 30~40건 정도 한다”고 말했다. 하루에 10만~15만원 사이의 수익이었다. 더 말을 붙여보려 했으나 그는 급한 듯 물품을 싣고 빠르게 사라졌다.

라이더가 마트 내 선반에서 배달해야 할 물품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

마트에선 코로나19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매장 내 스크린을 확인하니 30여건의 주문이 출고대기 중이었고 준비 중인 주문도 20건에 달했다. 라이더들이 정신없이 마트를 오갔지만 주문 요청은 더 빠른 속도로 올라왔다. 선반에는 배달물이 빈틈 없이 쌓여 있었다.

오전 11시쯤 첫 주문을 받았다. 고객은 요청사항에 ‘집 앞에 두고 벨을 눌러 주세요’라고 적었다. 골목길을 헤맨 끝에 목적지에 도착해 요청대로 벨을 눌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벨을 세 차례 누르자 고객이 나와 “그냥 놓고 가시라고 그렇게 요청한 건데…”라고 말하며 문을 닫았다. 대면 배달을 피하는 ‘언택트’ 요청이었던 것이다. 이날 받은 주문 10건 중 7건은 언택트 요청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음식 배달 요청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기 중인 주문 가운데 식당부터 목적지까지 거리가 224m밖에 되지 않는 김치찌개 배달을 선택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익숙해진 코로나19의 풍경이 보였다. 불을 꺼둔 식당은 몇 없는 테이블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포장·배달 주문만 받고 있었다. “배달이죠?”라고 물으며 찌개를 건네는 사장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배달 경로는 험난했다. 짧은 거리였지만 대부분이 가파른 언덕이었고 자전거로 이동할 수 없는 계단도 있었다. 길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언덕을 내달렸다. 목적지에 도달해 앱을 확인하니 예정시간이 2분 지났다는 알림이 울렸다. 땀이 비오듯 흘러 마스크는 축축해졌고 숨이 가빠왔다.

라이더들이 관악구의 한 마트 앞에서 배달 주문을 기다리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오후 4시쯤부터 비가 내리면서 도로가 미끄러워진 탓에 신속한 배달은 더 어려운 작업이 됐다. 배달료는 1000원 할증됐다. 라이더들은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선 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라이더는 “우천, 혹서기나 혹한기처럼 배달이 어려워야 할증이 붙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은 주문을 받고 경쟁적으로 배달하게 된다”며 “당연히 사고 가능성도 더 높다”고 말했다. 가파른 골목을 누비며 이날 오후 6시까지 9시간 동안 접수한 10건 중 9건의 배달을 완료하고 손에 쥔 수익은 총 3만5000원이었다.

글·사진=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