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2차 긴급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결정을 두고 “원망” “배신감” 등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우려했다. 당의 결정을 받아들이긴 하겠지만 후폭풍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경고성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것이다. 이 지사가 정부 정책을 두고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민주당의 전통적 진보 지지층을 겨냥해 독자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지사가 6일 정부·여당의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 방침과 관련해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뚜렷이 보인다”며 작심 비판했다. 대통령 실명까지 거론하며 비판 수위를 높인 것은 이례적이다.
이 지사는 선별 지급 방침을 수용하겠다면서도 “강제당한 차별이 가져올 후폭풍이 너무 두렵다”며 선별 지급에 궁극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재차 확인했다.
또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을 언급하며 “2400년 전 중국의 맹자도 250년 전 조선왕조시대 다산도 ‘백성은 가난보다도 불공정에 분노하니 정치에선 가난보다 불공정을 걱정하라’고 가르쳤다”고 덧붙였다.
이 지사는 당정청이 선별 지급을 공식화한 직후 페이스북에 ‘오로지 충심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또다시 게시했다. 이 지사는 “저 역시 정부의 일원이자 당원으로서 정부, 여당의 최종 결정에 성실히 따를 것”이라며 “이는 변함없는 저의 충정이다. 왜곡하지 말아 달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이 지사는 “선별 지급의 결과는 정책 결정자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위험할 수 있다”며 거듭 우려를 나타냈다.
이 지사는 재난지원금 논의 국면에서 연일 강경한 메시지를 쏟아내며 존재감을 부각하고 있다. 진보 색채를 강화한 정책적 선명성을 앞세워 차기 대권 주자로서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가 극렬 친문 지지층을 제외한 친문 지지층 중 진보 성향이 강한 지지층 공략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10%대에 머물러 있던 이 지사의 지지율이 20%대로 올라서면서 이낙연 대표를 바짝 추격하게 된 배경에 ‘진보 친문’의 지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자기에게 올 수 없는 극문 지지층은 포기하고 진보적 친문 지지층을 견인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 지사가 담론 경쟁을 시작한 것인데, 담론 경쟁의 1순위 목표는 이 대표와의 차별화”라며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진보적 색채를 가지고 있어서 지지했던 사람들은 이 지사의 진보적 접근 방식을 우호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불법 고리사채 이슈도 꺼내들었다. 이 지사는 지난달 대부업체 법정 최고 금리를 10%로 제한하는 입법 협조를 건의하는 편지를 민주당 의원들에게 보낸 바 있다. 또다른 정책 이슈를 선제적으로 주도해나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지사는 “현재 대한민국 가계부채가 심각하다”며 “최고 이자 10% 제한과 더불어 불법 고리사채 무효화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 발언에 당 안팎은 술렁였다. 당원 게시판에는 이 지사 발언이 해당행위라며 제명을 요구하는 글이 빗발쳤다. 친문 의원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한 친문 의원은 “정책적 논쟁은 건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다른 한 친문 의원은 “지지층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정치적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며 “친문 지지층에서 이탈한 중도층을 잡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이렇게까지 각을 세울 일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