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전기차 배터리 관련 소송 최종판결(10월 5일)을 앞두고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입이 다시 거칠어지고 있다. 합의보다 소송전 장기화로 기우는 분위기다. 양사는 ITC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포함해 3개의 배터리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다. 관련 소송이 마무리되는 데 최장 5년이 더 걸릴 수 있다. 이 경우 천문학적 소송비용을 포함해 양측 모두 대형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LG화학은 6일 ‘SK 입장에 대한 당부사항’이란 입장문을 통해 “제발 소송에 정정당당하게 임해달라”고 했다. 앞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ITC에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 대상 특허(994특허)가 LG화학의 선행기술을 활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ITC에 제재요청서를 제출했다. LG화학은 지난 4일 SK이노베이션이 994특허를 출원한 시점 이전에 이미 해당 기술을 탑재한 LG화학의 제품을 판매했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우리 기술을 가져가 특허로 등록한 것도 모자라 특허침해 소송까지 제기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증거인멸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훔친 기술 등으로 미국 공장을 가동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행위로 ITC에 특허침해를 주장하는 게 성립하지 않는 ‘부정한 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안타깝게도 당사는 경쟁사의 수준과 출원 특허의 질 등을 고려해 모니터링한다”며 SK이노베이션이 등록한 특허를 폄하하는 듯한 표현도 썼다.
SK이노베이션은 재반박했다. 선행 기술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무효가 될 특허를 굳이 출원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는 특허 자체의 논쟁보단 SK를 비방하는 데 몰두하다 상식 밖의 주장을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LG화학이 증거로 인용한 문서들에 대해서는 “특허 관련 정보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특허 발명자가 LG에서 이직한 사람은 맞지만, LG화학이 관련 제품을 출시한 2013년보다 5년 전인 2008년 이직했기 때문에 억지 주장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서 유난히 많은 사람이 퇴직을 하는 이유는 LG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문제”라며 LG화학 이직자 수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도를 넘어선 양측의 비방은 소송 관련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LG화학은 합의금으로 수조원을 책정했지만 SK이노베이션은 이직자의 3년치 인건비 수준인 수백억원을 합의금으로 제시한 것으로 업계에 전해졌다. LG화학 측은 “시간이 갈수록 SK이노베이션 측의 부담만 더 늘어날 상황이기 때문에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 측은 “LG화학은 뚜렷한 기준도 없이 거액을 얘기하는 걸로 안다”며 “말도 안 되는 금액으로 합의할 수 없다”고 했다.
‘감정싸움’이 격해지면서 최종 판결 전 양측의 합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는 소송이 모두 마무리되는데 3~5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지금까지 양측은 소송 비용으로만 4000억원 안팎으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치킨게임’ 양상이 계속될 경우 양사는 소송비용에만 각각 1조 이상을 지출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는 양사 주력 업종으로 그룹 차원에서 포기하기 힘든 면이 있는데, 소송을 계속할 경우 양사 모두 패자가 될 수 있다”며 “양측 최고경영 책임자가 자존심 싸움을 멈추고 파국을 막기 위해 합의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주화 권민지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