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국회의원 재산 공개를 계기로 촉발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갭투자’ 논란은 여러 측면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우선 현 정부 초대 국무총리이자 집권여당 대표가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 형태의 주택 구매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과도한 대출 규제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고가 아파트를 현금으로 구매했다는 점이 서민의 박탈감을 심화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애초 실수요와 투기가 혼재된 갭투자를 무조건 투기처럼 몰아간 정부·여당의 그릇된 인식이 ‘부메랑’으로 작용한 셈이다.
6일 국회 등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 2월 총선 출마 지역구인 서울 종로구로 이사하기 위해 원래 살던 서초구 잠원동 동아아파트를 19억5000만원에 팔고 종로구 홍파동 경희궁자이2단지 아파트에 보증금 9억원을 주고 전세 계약을 맺었다.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 대표는 전세 계약 석 달 만에 인근 종로구 내수동 경희궁의아침3단지 아파트를 전세를 낀 채 배우자와 공동 명의로 구매했다.
이 대표 측은 “현재 사는 경희궁자이 전세 완료 시기(2022년 2월)와 마침 같은 집이 있어 매입한 것이고 실거주 목적이기 때문에 갭투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갭투자는 부동산 시세 상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세 세입자가 있는 주택을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익(갭)만 지불하고 구매해두는 행태다. 차후에 실거주할 계획이라고 해서 갭투자가 아니라는 이 대표 측 주장은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다.
이 대표의 주택 구매는 정부 정책 기조와도 온도 차가 크다. 정부는 6월 17일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활용한 갭투자를 차단하기 위해 주담대를 받아 수도권 규제지역 주택을 살 경우 6개월 이내 실거주를 하도록 했다. 당시 김흥진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주택에 대한 실수요라는 것은 거기에 거주하면서 주택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그동안 여러 차례 “직접 거주하는 집 외에 모든 집을 파시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 대표의 경우 6·17 대책 전에 아파트를 샀고 대출을 받지 않아 실거주 의무 적용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대표가 대출 없이 현금으로 아파트를 산 것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현 정부의 강화된 대출 규제로 서민의 내 집 마련 사다리가 사실상 끊긴 상황에서 “현금 부자들만 집을 살 것”이라는 우려를 이 대표가 몸소 보여줬다는 점 때문이다. 이 대표는 잠원동 집을 판 돈으로 현재 사는 아파트의 전세보증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새 아파트를 샀다.
전문가들은 이 대표의 아파트 구매보다는 애초에 갭투자 자체를 불법 투기로만 몰고 규제한 정부·여당의 정책 방향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갭투자는 부동산 투기 수단일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이 주담대를 과도하게 억제한 상황에서 현금이 부족한 실수요자가 전세보증금을 지렛대로 활용해 내 집 마련을 하는 수단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의 정책이나 인식이 현실과 맞지 않다 보니 정부·여당 인사들조차 정책 방향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라며 “이런 사례가 모여 결국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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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