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올라야 할까, 떨어져야 할까. 부동산 광풍(狂風)에 휩싸인 2020년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논쟁적인 질문도 드물 것이다. 6·17 부동산 대책 이후 지인을 만날 때마다 이 물음을 던져 봤다. 계속 올라야 한다고 말한 이는 드물었다. 집값이 오르는 게 좋은 일이냐며 반문한 사람도 있었다. 중산층과 서민들이 비싼 집 사려고 빚내지 않아야 소비 여력이 늘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나름 전문적 식견까지 나왔다. 집 가진 사람들도 생각은 비슷했다. “지금은 너무 오른 거 같지 않니?”
이 같은 생각에 반박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 그리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대 교수 등과 같은 주류 경제학자들이다. 이들에게 부동산은 수많은 자산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인류가 화폐를 찍어내는 한 자산 가격은 꾸준히 올라야 한다. 급하게 오르는 것도 문제지만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재앙이다. “집값이 오르면 소수가 행복하고 집값이 떨어지면 모두가 불행하다”는 게 이들의 확고한 이론이다.
쉽게 풀어보면 이렇다. 5억원 빌려서 10억원짜리 집을 산 사람이 있다 하자. 집값이 8억원으로 떨어지면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50%에서 62.5%로 불어난다. 5억원까지 떨어지면 ‘부채 100%’다. 자산보다 빚이 커지면 지갑을 열 수가 없다. 경제 불황이나 금리 인상이라도 만나면 즉시 파산이다. 미 연준과 학계는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에 빠지게 된 이유를 여기서 찾았다. 부동산 거품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정상화’를 하겠다”며 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긴축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소비 여력이 와르르 무너졌고 경제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집값이 오르는 게 좋다니.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에 와닿진 않는다. 오를 거면 다 같이 올라야 할 거 아닌가. 월급도 매출도 제자리인데 집값만 오른다면 무슨 소용인가. 속 타는 마음이야 어찌 됐든 전 세계는 코로나19 사태 속에 미국을 필두로 ‘돈 풀기’에 뛰어들었다. 심지어 인도네시아는 지난 7월부터 ‘부채의 화폐화(Debt Monetization)’를 시도했다.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직접 사 주는 정책이다. 한마디로 중앙은행이 정부의 사(私)금고가 된 것이다.
풀린 돈이 골고루 퍼지지 않는 현상은 만국 공통의 딜레마다. 미국은 애플, 아마존 등 공룡 정보기술(IT) 기업으로만 빨려 들어가고 있다. 가장 안전하고 성장성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게 돈의 속성인 만큼, 결국 그 나라 경제의 핵심을 의미한다. 한국은 그게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였을 뿐이다.
물론 속사정은 조금 다르다. 돈이 몰리면 투자가 늘고 관련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 IT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며 끝없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건설 산업은 어떨까. 건설 투자 증감률은 2018년 이후 3년 연속 마이너스다. 내년에도 마이너스가 유력하다는 말이 나온다. 어떤 가게가 잘 되면 다음 날 바로 옆에 똑같은 가게가 문을 여는 게 한국 경제의 습성이다. 그런데 주택 공급의 길이 꽉 막히면서 이 같은 생태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집값 상승의 과실은 얼떨결에 집주인만 누리는 꼴이 됐다.
응축된 에너지는 슬슬 다른 곳으로 향하는 거 같다. 한국은행을 떠난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초 통화에서 “이제 화살이 통화 당국으로 넘어갈 거 같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달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여당은 집값 급등의 책임을 ‘금리 인하’ 탓으로 돌렸다. 코로나 2차 쇼크에 빠져 4차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서두르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했다. 부동산 급등에 이어 우리는 또 어떤 상황을 목도하게 될까. 무주택자지만 ‘정상화’ 주장이 더 무서운 건 왜일까.
양민철 정치부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