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지게

입력 2020-09-07 04:02

시골 친구 집에서 오랜만에 지게를 보게 됐다. 반가웠다. 어릴 때 아버지께서 지게를 지고 일을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도 지게를 쓰고 있다니. 친구는 선친이 쓰던 물건이라 버리지 못하고 가끔 가벼운 짐을 나르는 데 이용한다고 했다. 요즘 농사에는 경운기보다 트랙터를 더 많이 쓴다. 지게는 가까운 거리라면 경운기보다 더 편리하고 등받이와 멜빵을 갈아주면 몇 해를 더 쓸 수 있다고 했다. 산림이 국토의 6할이 넘는 우리에게 지게는 참으로 유용한 운송수단 아닌가. 산지가 많고 골짜기의 물을 건너야 하니 수레보다 등에 져 나르는 것이 더 편리했으리라. 그래서 우리나라는 수레가 발달하지 못한 것 같다.

지게는 가장 적은 힘으로 무거운 짐을 나를 수 있다. 옛 보부상들은 자신의 몸무게보다 배나 되는 100㎏ 정도의 짐을 져 날랐다고 하지 않던가. 구조도 그리 복잡하지 않아 간단한 연장만으로도 만들 수 있는 지게. 두 개로 갈라진 소나무 한 쌍을 적당한 두께로 깎고, 가로지르는 새장 세 개를 끼워 맞춘다. 맨 위의 새장에 멜빵을 걸고 양쪽으로 나눠 목발에 매면 지게가 된다. 짚으로 엮은 등받이를 대면 푹신하고 짐을 졌을 때 어깨의 하중도 줄여 준다. 어릴 때 어른들이 산더미 같은 짐을 져 나르던 모습을 본 터이다.

우리 지게는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창의적이다. 지게를 쓰는 민족이 우리 외에도 일본이 있긴 하지만 저들의 지게는 조센가루이, 조센오이코라 하듯이 우리가 전해준 물건이다. 지게보다 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각국에서는 지게보다 대나무 쪽을 어깨에 메고 양쪽 끝에 짐을 달고 걷는다. 한쪽 어깨에 하중이 실리는 것보다 양쪽 어깨에 걸고 짐을 졌을 때 얼마나 쉽고 편리하겠는가. 우리 아버지 세대는 지게에 삶의 무게를 싣고 몸으로 져 날랐다. 평생 벗어나지 않았던 눈물겨운 삶의 굴레가 바로 지게. 지게는 곧 우리의 아버지.

오병훈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