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발성 골수종 신약 병용 치료도 건보 적용 환자 부담 줄여야

입력 2020-09-07 19:03
재발이 잦은 다발성 골수종은 초기 단계에 효과를 최대한 높이는 치료 옵션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신약이 들어간 병용 치료법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얼마 전 희귀난치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은 65세 아버지를 둔 A씨.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 힘든 투병을 해야 하는 아버지를 생각해 초기부터 가장 효과가 좋은 치료를 받게 해 드리고 싶었다. 의사도 최근 허가받은 신약이 포함된 여러 약제 병용 요법을 추천했다. 임상연구를 통해 이 병용 치료법의 사망 위험 감소 등 효과와 내약성이 입증됐다고 했다.

하지만 신약이 추가되는 병용 요법을 선택할 경우 환자 본인이 고액의 치료비를 100%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망설여졌다. 그런데 신약 없이 다른 치료제들로만 병용하거나 신약만 따로 쓸 경우에는 각각 건강보험 적용(본인부담 5%)이 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앞에서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었다.

다발성 골수종은 골수에서 백혈구의 일종인 ‘형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암이다. 기존 치료에 불응이 잦고 반복적인 재발률이 높다. 특히 기존 치료제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유형의 환자는 기대 수명이 평균 5개월 안팎에 불과하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에 이런 다발성 골수종 환자는 7000여명이 있다. 2017년 기준 1600여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했다. 고령 인구 증가와 평균 수명 연장의 영향으로 환자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환자의 80% 이상이 60세 이상 고령층이다.

재발이 잦은 다발성 골수종은 치료 옵션이 많을수록 환자 생존율에 영향을 미친다. 치료 차수가 늘수록 치료 가능한 기간과 관해(증상 완화) 유지기간이 점점 짧아지므로 초기 치료 단계에 치료 효과를 최대한 높이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그런데 진단 초기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발성 골수종 환자들은 전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매우 제한적이다. 환자에게 적합하게 사용 가능한 효과적인 치료제와 병용 요법이 여럿 허가돼 있음에도 앞서 A씨 아버지 사례 처럼 신약이 추가되면 보험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발성 골수종 신약(다잘렉스)은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1, 2차 병용 요법 5가지에 국내 사용이 허가됐다. 즉 조혈모세포(골수)이식이 적합하지 않고 이전에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들(1차)부터 기존 치료법에 실패한 환자들(2차)도 다른 치료제 2~3개와 함께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병용 치료법의 효과와 안전성은 3가지 글로벌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됐고 시판 허가의 기반이 됐다.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겼거나 더 이상 약이 듣지 않아 뾰족한 방법이 없었던 환자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문제는 기존 치료제들로만 병용하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만 신약이 포함되는 순간, 급여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약 단독(4차 치료)으로 사용할 땐 또 보험이 적용된다. 그에 따른 치료 비용 차이는 크다. 평균 몸무게 60㎏인 환자가 신약을 뺀 병용 요법(보르테조밉 등 3가지 약제)으로 초기 4주간 치료받을 경우 보험이 모두 적용돼 약 2000만원의 비용을 내면 된다.

하지만 해당 병용 요법에 신약을 포함하면 치료비는 1억원으로 껑충 뛴다. 기존 보험이 되는 치료에 신약이 들어감으로써 환자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 약 5배 늘어난 것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환자들이 더 나은 치료를 받고 싶어도 엄청난 약값 때문에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 때문에 한국혈액학회 다발성 골수종연구회 등 관련 의학계가 신약 병용 치료 보험 급여의 당위성에 대한 환우회 의견을 수렴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1차 병용 요법을 필요로 하는 다발성 골수종 환자는 전체의 약 46%, 2차 병용 요법을 받을 수 있는 환자는 26% 정도 된다.

백민환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장은 “다발성 골수종은 재발과 함께 기존 치료에 대한 불응을 보이기 때문에 환자들이 쓸 수 있는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 보장이 필수다. 신약 병용 요법의 경우 보험 적용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기 어려운 환자가 본인 부담을 해서라도 쓰고자 할 때 기존에 급여가 되던 병용 요법 비용까지 전액 본인이 떠 안아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다발성 골수종 환자들이 효과 좋은 치료제를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빨리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도 “다발성 골수종 특성상 다양한 치료 환경의 보장이 필요하며 내약성이 우수한 치료제 병용을 가능한 많은 환자들에게 초기에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